‘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 삭~’. 70년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온갖 좋은 뜻을 동원해 79자의 글자로 만든 사람의 이름이다. 90년대까지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말장난이었다. 청주시에서는 시민의 욕구에 맞춘 다양한 사회복지 기관이 존재한 다. 사회복지사로서 일하고 있노라면 지역 곳곳에 위치한 기관들의 이름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이름이 너무 길다.

△ 충북지적장애인복지협회 청주시지부 직업훈련센터 함우리 △ 한국장애인부모연대 충북지부 한사랑 주간보호센터……

기관들의 명칭은 필수 단어로 꾸려진 집합 체처럼 보인다. 우선 지역이 등장한다. (지 역을 설명할 때 OO시지부가 딸려 오기도 한다.) 그리고 대상, 주 이용자의 유형, 서비스 기관의 주요 역할 등을 주욱 나열하면 그 기관의 명칭이 된다. 위의 예시처럼 함우리 같은 대명사는 맨 마지막에 위치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지만 일반적인 형태를 예로 든 것이다. 이용자들은 기관의 적절한 약어를 만들어 내거나 작업장, 복지관 등 상징적인 표현, 혹은 해당 지역의 이름으로 설명한다. 누구도 기관의 기나긴 이름을 기억 하지 않는다. 예로 든 함우리처럼 기관의 명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관의 이름을 설명하기 매우 난처해진다. 줄임말을 시도해 도, 해당 지역을 조합해 설명하려 해도 이용 자나 사회복지사나 혼란에 빠지기 마련이 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기나긴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걸까.
첫째, 각 지역과 대상, 기능을 기관명으로 명시해야 이용자가 판단하고 찾아올 수 있다는 필요성의 문제다. 둘째, 기관의 역할은 어느 정도 유형화되었지만 특색에 맞는 적절한 약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각 기관에서 하고 있는 기능과 역할에 대한 적절한 정의와 브랜드화가 되지 못 한 것일지도 모른다. 도서관, 박물관처럼 직관적 으로 기능을 확인할 수 있어야 이용자의 접근도 편해지는 것이다. 이름이 이렇게 길어 서는 소통에 장애를 가져온다. 발음마저 ‘간 장공장공장장’처럼 빠르고 난해하니 부드럽 게 이어지지도 못한다.
단순히 이름에 슬픔을 느낀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름 때문에 소통에 불편을 겪는 시민 한 명의 깊은 슬픔이다. 경남 거창에 위치한 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은 애써 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설명하지 않는다. 전국에서 기관견학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그 기관의 이름은 딱 4글자, 월평빌라다.
이름은 기관의 정체성을 규정짓기도 한다. 그 동안 모든 것을 이름에 담아 칭하는 것이 이용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고민이 적지 않았을까?

▲ 김학철 사회복지사 (혜원복지관)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