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마’ 연재를 시작하며

‘자연’은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이다.
내가 숨 쉴 수 있게 해주고, 나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동시에, 호기심 많은 나의 관찰거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숲속을 걸을 때마다 나는 자연 에게서 어떠한 경외감을 느낀다. 내가 7살 때 심었던 나무가 지금은 햇빛을 가릴 만큼 커졌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때 놀라운 감정이 일곤 한다.
과거 관직에 올랐던 수많은 문인 들의 말년은 항상 자연과 함께였다.
그들은 자신의 정서를 자연에 빗대어 시로 표현했다. 자연과 함께하고자 하는 심정은 비단 옛날 사람들에 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에 서도, 사람들은 피로한 삶 속에서 병들고 지쳐버린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자연을 찾는다. ‘사람이 자연을 원한다.’는 말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 다. 사람은 애초에 자연의 일부였으니 말이다.
자연의 일부분인 사람이 그곳에서 얻게 되는 건 무엇일까. 바로 몸과 마음의 회복이다. 일본의 거장 미야 자키 하야오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자연’이란 소재를 자주 활용했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주인공(캐릭터)들은 그들의 불행과 상처를 자연 속에서 치유한다. ‘회복의 공간’으로서의 자연은 내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숲속에서 알수 없는 행복과 경외감을 느꼈던 이유를. 나는 ‘회복의 공간’을 걸었던 것이다.
산업화 이후 도시의 수가 급격하게 많아지면서 숲의 규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접근해보려 한다.
녹지공간을 파괴하는 행위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다시 말해, 그런 행위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자연은 인간이 비롯된 터전이자 모든 것의 회복의 공간 이다.
여기에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수없이 많은 동식물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영원한 시간 속에서 그 모든 생명체들을 껴안고 있다. 사람들이그 공간을 파괴한다는 건 존재의 근원을 지우려고 하는 것과 같다. 풀한포기 없는 아스팔트 바닥 위로 높게 솟아오른 도시의 모습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있는 풍경이 되었다. 무엇인가 결핍된 사람들은 자신을 충족시켜줄 어떤 것을 찾고자 하지만 그 인공적인 공간에서 그들이 찾으려 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나무를 가차 없이 베어버린 공간에서, 치유의 공간을 없애버린 곳에서, ‘살아있는’ 것을 기대 하고 몸과 마음의 ‘회복’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지 않을까.
2009년 초등학교 2학년 때, ‘두꺼 비마을신문’에 세 두꺼비의 고군분 투를 그린 만화 <태권두비>를 연재 한 적이 있었다. 한 쌍의 두꺼비 부부가 알을 낳으러 구룡산 꼭대기에서 산 아래 방죽까지 내려간다. 그들을 지키는 또 한 마리의 두꺼비. 실제로 두꺼비들의 삶은 하나의 모험 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가는 길 곳곳에 위험한 천적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꺼비 부부는 알을 낳는 데 성공하고 다시 자신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10년의 세월이 지나고 다시 그 만화를 읽어 봤다. 생각해보니, 오늘날 두꺼비 주변에 도사린 위협은 비단 천적동물만 있는 게 아니 라는 것을 깨달았다. 곳곳에서 진행 되고 있는 도시개발사업은 그에 못지않게 두꺼비를 비롯한 이 땅의 모든 생명체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2019년 새롭게 내놓은 <나하마>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태권 두비>의 후속작이다. 이 작품으로좀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공원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국지적인 환경보호의식 에서 전체적인 자연 생태계에 대한 애정을 갖게까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두꺼비
더터비·두텁·둗거비라고도 하였으며 한자로는 섬여 (蟾 蜍 )·축 추 ·추 시 ·섬 제 (詹諸)·나하마(癩蝦蟆) 등으로 불린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 조정강(세광고 3) 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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