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을 지났으니해 뜨는 시간이 앞당겨졌다지만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것은 여전하다. 우렁찬 핸드폰 알람 소리에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이불 속에 뭉그적거린다. 늑장을 부리다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허둥지둥이다.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아차차, 거실에 고이 모셔둔 서류 봉투를 떠올리고 기어이 다시 들어갔다 나오기를 통과의례처럼 한다. 막문이 닫히고 내려가려는 엘리베이터를 가까 스로 붙잡고 아슬아슬 올라탔다.
아침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은 날마다 다른 사연이 펼쳐진다. 출근하는 아빠와 함께 타는 초등학생 두 딸,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쑥스러운 목례를 짧게 건네는 중학 생, 감은 머리를 채 말리지도 못하고 커다란 가방을 메고 타는 고등학생, 아침마다 노인 대학에 가신다는 어르신….
오늘은 웬일로 엘리베이터가 텅 비어 혼자 독차지다. 인사 나눌 이가 없으니 괜히 마음이 허전하다. 그런데 네모 반듯 엘리베이터 한가 운데에 가지런히 놓인 상자가 눈에 띄었다.
“나눔합니다.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 어라? 지금은 호두 나올 시기가 아닌데?
수확 시기는 아니지만 어느 집 사연이 담긴 호두인 모양이다. 상자 한가득 가지런한 크기의 호두가 동글동글 모여 담겼다. 수북한 호두만큼이나 가득 담긴 마음이 느껴진다.
상자 속 호두를 만지작거리다 세 개를 집어 들었다. 우리 가족 숫자 만큼이다. “고맙 습니다.” 하고 허공에 인사를 남길 새도 없이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쏜살같이 올라가 버린다. 띵동 소리와 함께 어느 층엔가 멈춰 설 테지. 뜻밖의 호두 선물을 발견할 사람들의 표정이 궁금하다.
문득, 몇 해 전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했 던 마니또 게임이 떠오른다. 담임인 나를 포함해서 반 아이들 모두 마니또를 정했다. 마니또는 하루 중 친구의 행동에서 칭찬거리를 찾아내어 게시판에 몰래 메모를 붙여놓 는다. 날마다 숨은 그림 찾 듯 마니또의 선행을 찾는 재미도, 마니또로부터 비밀 칭찬 선물을 받는 재미도 쏠쏠했던 날들이었다.
마니또 덕분에 우리 반에서는 누구도 외롭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호두를 이리저리 굴려 본다. 울퉁불퉁 호두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마니또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지하주차 장을 빠져나가자 아직은 싸한 봄바람이 상쾌하다. 봄꽃을 샘내는 꽃샘추위라 했던가?
오늘은 호두 온기에 꽃샘추 위를 잠시 잊어본다.

▲ 추주연(충북단재교육연수원, 산남퀸덤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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