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쾌청한 파란 하늘이다. 마을신문에 쓸 사진을 찍을 요량으로 구룡산에 올랐다. 꿩이 ‘꿩, 꿩’ 울며 날아다니고 밭가는 농부의 손길은 분주히 움직인다. 도심 속에서 자연과 전원의 정취를 느낀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수많은 생명이 공존하고 있는 이 평화로운 곳이 개발 위주의 도시화 과정 속에 풍전등화라니!

  한범덕 청주시장이 구룡 공원 매입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반대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매입 재원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매입 반대 측은 도시공원 일부에 대규모 아파트를 개발하게 인허가 해주고 그 대가로 일부 공원을 지키자고 한다. 대규모 아파트 민간개발이 시작되는 순간, 구룡산은 청주의 중요 녹지축이자 도시 속 생태 보고라는 지금의 모습을 상실할 것이다.

▲ ‘토토로의 숲’1호지 표지판

  구룡산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대규모 아파트를 짓고 그 수익금으로 일부 공원을 보호하는 민간개발이 결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자체에서는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을 세워 순차적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시민들도 함께 구룡산 토지 매입에 십시일반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보존 방안은 어떨까. 그런 기적이 실제로 이웃 나라 일본에서 일어났다. '토토로의 숲’이 바로 그곳이다.
  ‘토토로의 숲’은 도쿄시와 사이타마현에 걸쳐 있는 ‘사야마 구릉(狹山丘陵)’이라 불리는 숲을 말한다. 도시로 둘러싸인 숲이라고 해서 ‘녹색 섬’이라는 별칭이 생긴 곳이다. 이 일대는 1960년대부터 택지 개발로 훼손되면서 문제점이 야기되다가 1980년대 말에 대규모 개발 계획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보존 활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토토로의 숲도 지금의 청주의 도시공원과 마찬가지로 사유지가 많았다. 이로 인해 창고 건설 등 크고 작은 개발 위협이 끊이지 않았다. 사유지가 많은 ‘사야마 구릉’을 보존하기 위해 일본 시민들은 이곳 일부가 《이웃집 토토로》(1988년 제작)에 나오는 장면과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승낙을 얻어 사야마 구릉을 ‘토토로의 숲’이라 명명하고 ‘토토로의 고향 기금’ 재단을 만들어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을 펼쳐 현재의 자연 녹지 상태로 보존해왔다.

  ‘토토로의 숲’은 도시공원 일몰제 정책 마련에 부심하는 청주시에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첫째, ‘토토로의 숲’은 개발 풍조가 강한 청주시와 유사한 사례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토토로의 숲’ 조성 활동은 1970년대 석유 콤비나트건설 반대 운동과 미나마타병을 출발점으로 하는 일본의 공해교육과 환경교육이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전개되었다. 청주의 도시공원 지키기도 급속한 도시화와 개발로 야기된 도시의 생태계 파괴,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심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도시공원이 갖는 환경적 가치를 발견한 데서 출발했다. 둘째, 토토로의 숲은 지자체와 시민들의 협력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일본의 사이 타마현 지사는 도시의 심각한 공해에 대응하기 위해 토토로의 숲(사야마 구릉 도시공원) 보전을 천명(1986년)했고, 시민들이 ‘토토로의 고향 기금 재단’을 중심으로 내셔널 트러 스트 운동을 펼쳐 1991년 토토로의 숲 제1호 지가 탄생했다.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란 ‘국민이 자금을 모아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연환경이나 사적(史跡) 따위를 사들여서 보존하는 제도’를 말한다. 토토로의 숲 1호지를 구입할 당시 일본은 경제 호황 라 토지 가격도 매우 비싼 시기였다고 한다. 당시에 워낙 토지 구입비용이 높아 내셔널 트러스트로 1호지를 산다는 건 ‘미친 짓’이 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환경오염에 대한 반성, 사야마 구릉 같은 ‘마을 산(里山)은 공공의 재산’이라는 국민적 공감대, 영화 《이웃집 토토로》라는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1년간 1억 엔의 기부금이 모였고, 이를 기점으로 그 넓은 사야마 구릉은 ‘토토 로의 숲 48호지’까지 생기면서 자연 녹지로 보전되고 있다.

▲ 토토로의 숲 홍보물:‘사야마 구릉을 지키려면 긴 시간과 고액의 비용이 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생각이 토토로의 숲을 떠받치고 있습니다.’,‘토토로의 숲을 지키려면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토토로의 숲’은 청주의 도시공원, 특히 구룡산과 많이 닮았다. 도시로 둘러싸여 있는 숲임에도 생태환경 보전이 잘된 곳, 게다가 무당벌레나 두꺼비가 살아 있고, 숲이 시민들에게 다양한 생태체험의 현장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토토로의 숲은 처음엔 사유지가 많았다가 지자체와 시민들의 힘으로 공유화를 이루었지만 구룡산은 아직 사유지가 많은 채로 있다는 점이다.
  이제 청주시도 ‘토토로의 숲’을 모델로 삼아 시민들과 함께 구룡산을 지켜나가면 어떨까. 청주시장과 관련 공무원들이 일치단결하여 구룡산 매입 보존을 실행하고 시민들과 함께 지켜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숲을 진정으로 보전하는 길이요, ‘맑은 고을’ 청주의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수있는 절호의 기회다. ‘숲’이 사라지면 자연환경도 시민들도 모두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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