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미 멀린스

 에이미 멀린스라는 사람이 있다. 미국 출신의 육상 선수이자 배우, 모델로 활동하는 이른바 만능 엔터 테이너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종아리뼈가 없이 태어나 무릎 아래를 평생 의족을 착용하며 살았다. 활동의 저변을 넓혀가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라도 지워낸 사람이기에 많은 이들로부터 기억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그녀의 사진을 찾아보면 인상적인 사진이 많다. 패션쇼에서의 우아하고 당당한 모습, 육상 경기에서의 날렵하고 투지 넘치는 모습까지 다양하다. 배우로서는 어떤 활동이 있었을까. 혹시 영화 킹스 맨에서 화려한 무술을 구사했던 의족을 착용한 여성 악당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요즘 CG로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기에 그녀의 의족도 당연히 CG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진짜 의족이었다.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면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는 생각보다 다채롭지 않다.
 ‘장애를 넘어 / 역경을 딛고 / 편견에 맞서고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이 단어들이 사용된 기사는 내용이 굳이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대로니까. 몇 년 전부터 필자는 이 지점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장애를 딛고 일어난 사람의 의지를 칭찬하는 기사는 과연 언제까지 나오게 될까.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의 저자 김원영 변호사는 극복이라고 표현하는 순간을 벗어나더라도 여전히 그들에게는 장애가 존재하며, 상황에 맞게 적응했을 뿐이라 말한다. 극복했다는 말은 당사자의 장애를 전제하고 있으며 극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 상황이 쉽게 전시되기도 한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장애인에 대한 인권을 존중하며 차별 없이 지낼 수 있는 날은 내가 사는 동안 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서야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장애인의 도전이 다른 것에 비해 특별하게 취급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소수자를 향한 혐오의 표현을 규제하는 데 급급했던 몇 년 전의 일들이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인권 감수성이 높아지는 만큼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게 됐다. 단언컨대, 장애를 극복했다는 이유로 더 많이 칭찬하거나 주목하지 않는 사회가 지금보다는 더 평등을 지향하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 김학철 사회복지사(혜원복지관)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