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바쁜가

주변에 바쁜 사람이 참 많다. 우리는 지금도 바쁘고, 앞으 로도 바쁠 것이다. 전화를 걸었을 때 ‘통화 괜찮으세요?’라고 인사를 대신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매우 높은 확률로 바쁘리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나타난 미안함이다. 만남을 약속해도 만나기 10분전에 일어나는 불특정 변수는 왜 그리 많은가. 그럼 우리는 왜 바쁘게 사는 지, 일은 항상 한 두개가 아니고 떼로 몰려오는지 나름대로 생각해 봤다. 나도 바쁜 것보다는 한가로운 것이 좋다.
의외로 간단한 결론이다. 우리의 모든 것이 빨라졌다. 우 편으로 전달했던 내용이 클릭과 터치 몇 번으로 해결이 가능하며, 말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의사소통 체계가 보편화되었다. 빠른 처리가 우리에게 휴식이라는 보상을 줬다면 분명 장점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의 채택은 우리의 생활 속도를 한껏 올려버렸 다. 빠르게 처리한 만큼 여유시간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사이 다른 일을 더 가져온다.
좋아하는 음악을 주의 깊게 감상하고, 책에서 만난 소중한 글귀를 사색할 여유가 없다. 맛있는 음식을 여유롭게 음미할 시간을 잃었고, 마음이 통하는 상대와 공감할 기회를 저버리고 있다. 이 같은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이유는 행위에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빨라진 생활 속도를 쫓아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 시간이 없는가에 대해서는 각자의 이유가 있지만 일부러라도 생활의 템포를 늦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인스턴트커피 대신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드립커피를 마신다던가, 후딱 먹어치우던 아침 식사를 제대로 갖춰놓고 먹어본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저 해치우는 데 급급했던 일이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바뀔 것이며 생활의 속도 또한 그에 맞게 변할 것이다. 개인적 으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처리의 속도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고 작은 것에 확실한 행복을 느낀다는 ‘소확행’도 한 때의 유행에 그칠 것이 분명하다. 삶의 전반적인 속도를 조절하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쫓기며 생활을 잠식당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바빠졌다.

▲ 김학철(혜원복지관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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