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이른 아침, 꾸물꾸물한 하늘에 제법 찬 공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을을 실감나게 한다. 오늘은 3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교원 연수 과정의 하나로 현장방문체험을 가는 날이다. 생생한 현장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크지만 주말인데 단잠은커녕 아침도 거르고 모일 선생님들 처지가 마음 쓰여 빵집을 찾았다. 덕분에 우리 마을 빵집이 아침 7시 30분이면 문을 연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오늘 선생님들과 함께 찾아갈 곳은 ‘꿈마을 공동체’이다. 이곳은 어느 농촌 마을도 아니고 산자락 아래 마을도 아니다. 대도시에 위치한 도심 속 마을이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에서는 주민들이 자기들이 사는 마을을 ‘공릉동 꿈마을’이라고 부른다.
  아침 일찍 서두른 덕에 고속도로와 서울 시내 길까지 막힘없이 공릉동 꿈마을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공릉청소년문화 정보센터’에 도착했다. 센터지기이자 자칭 마을형 미남이라는 이승훈센터장님이 소탈한 웃음으로 맞아주신다. 삼면이 온통 유리로 장식된 센터에는 도서관, 청소년 놀이공간인 ‘별볼일있는 유스카페’, 모여서 차 마시고 수다 떠는 ‘꽃다방’ 등 구석구석 누구든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자리 하고 있다.
토요일 오전인데 센터는 아이들과 주민들로 북적거린다. 아마도 센터장님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환대, 참여, 존중이 실현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벽에 무심하게 붙어 있는 ‘모든 인생은 훌륭하다’는 글귀가 누구나 편하게 이곳으로 걸음을 옮기도록 하는 것이리라.
 센터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실로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시작된 변화’ 프로젝트가 가장 인상 깊었다. 청소년들이 마을의 문제나 일상 속에서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는 활동이다. 버려진 땅에 꽃 심기, 바닥에 뱉은 껌 떼기, 어두컴컴한 굴다리에 벽화 그리기, 마을 사람들과 인사하기 등의 프로젝트를 아이들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고 발표한다. 오늘도 센터 복도에 책상 하나 펴놓고 페이스 페인팅 자원봉사 팻말을 내건 여중생 2명에게 연수생 선생님들이 얼굴을 맡기기도 했다. 크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일상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으며 아이들은 마을 안에서 소통하고 있었다.
  어머님들이 운영하는 협동조합에서 정성스레 준비해준 마을밥상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마을탐방에 나섰다. 공릉동 꿈마을 여행은 주민들이 함께 마을지도를 만들고 마을여행 코스를 개발했다고 한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청소년 마을해설사들이 활약 중이고 초등학교 3학년 ‘우리 마을 잘 알기’수업, 중학교 자유학기제, 진로체험 활동과도 연계한다.
  마을해설사 선생님이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벽돌집 앞에 서서 그 집의 역사를 들려준다. 마을 놀이터, 풍물패 연습실, 도깨비 시장, 경춘선 철길 공원…. 마을 골목 길을 다니며 익숙한 공간에 숨어 있던 의미를 다시 발견하고 전통을 만들어 간다. 마을 곳곳이 새롭게 보이고 관계가 열리고 연결된다. 유모차를 끌고 나와 산책하는 사람들 곁을 지나 도깨비 시장을 둘러보고 마을의 사랑방이라는 풍물패 연습실에 들렀다. 번듯하게 잘 꾸며진 좋은 시설은 아니지만 마을의 소중한 공간을 안내하는 마을해설사 선생님의 모습이 진지하고 아름답다.
  연수에 참가한 선생님 한 분이 마을 주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 공동체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어떤 시스템으로 누가 하나요?” “글쎄요.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요. 그 때 그 때 모여서 이야기 할 뿐이에요.”
  꿈마을 공동체는 잘 정비된 조직이 아니다. 한 달에 한번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마을 일을 논의하고 진행한다. 회비도 없고 회칙도 없고 대표도 없다. 없는 게 많은 공동체.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로 마을을 채워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저 다 함께 잘사는 공동체, 살맛나는 공릉동을 꿈꿀 뿐이다.
“엄마가 돈 벌면 중계동으로 이사 간다고 했어요.” 7~8년 전, 이렇게 말하던 아이들은 여전히 마을에 살며 대학생이 되어 어린 후배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어서 이사 가고 싶다던 아이들은 이제 우리 마을 공릉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서울 도심 한복판 공릉동 꿈마을에서 우리는 각자가 사는 마을의 소소한 골목과 친근한 이웃들을 떠올렸다. 마음속에 함께 꿈꾸는 마을, 별 볼일 있는 마을을 위한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

▲ 추주연(단재교육연수원) 선생님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