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가 감정을 품거나 숨길 때 시에 감응한다. 감정이 숨어있는 시는 눈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행간의 밖을 내다보는 시의 눈빛. 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는 그 눈빛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그 눈빛은 검은 행간에 얼마나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것인가. 얼마나 많은 표정과 이야기와 길고도 먼 마음을 숨기고 있는 것인가.
어떤 현대시들은 표정이 없다. 감정을 절제하고 날카롭고 견고한 구조와 묘사 속에서 현대성을 드러내는 일에 집중한 다. 더러는 놀랍게도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대해 신경증적인 기피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감정이 거세된 시들은 지나치게 기술적이다. 기술은 예술과는 좀 다른 것이다. 예술은 사람의 마음에 가 닿기 위해 존재한다. 서로 어깨를 겯고 등을 두드리며 슬픔을 이겨내고 고양하여 본질적 부조리로 가득한 이 세계를 건너기 위해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 읽을 시 <북>은 아버지에 관한 시이다.

 

    북       한우진

 아버지는 북이다 한 번도 북을 두드려 보지 못하고 북을 향해 누웠다 나는 생전의 아버지 앞에서 한 번도 북을 위로 놓고 지도를 펴 보지 않았다 북을 발밑에 깔고 남으로 서울을 지나 괴산, 충주를 손톱으로 눌렀다피 묻히고 얼룩진 자리가 고향이 아닌가요, 나는 우기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북을 따뜻한 남쪽으로 그리워했다 형편없는 마당이었지만 목련은 피었다 목련은 남을 등지고 북으로만 꽃을 피웠다 아직 맺히지도 못한 나는 아버지 등을 돌려보세요, 이쪽이 따듯한걸요, 남풍이 불어도 아버지는 북을 향해 단추를 풀었다 북창이 많은 집일수록 아버지는 값을 높게 쳐주었다 내가 북리에 편지를 써대기 시작할 무렵 북관에서 새들이 날아올랐다 그것 보렴 두드릴 수 있다니깐 그러나 새들은 얼음덩어리로 북적거렸다 아버지는 누가 두드려주지 않는 북처럼 윗목에 놓여졌다 아직도 아버지는 북이다 어김없이 올해도 나는 북을 향해 아들과 함께 절을 하였다 아버지 북 받으세요
ㅡ 시인세계, 2005

 

<읽기>
한우진 시인은 괴산 사람이다. 그의 부친은 미루어 짐작컨대 북에서 내려 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 셨다. 아버지는 북이다-라는 서술 속에는 여러 함의가 있다. 북에서 온 사람이란 의미와 북녘을 그리워하며 산사람이란 의미, 북의 사람으로서 남쪽 에서 받았을 설움을 상징하는 동네북을 함의하기도 한다고 보여진다. 한 번도 북을 두드려보지 못하고-란 말은 살아서 즐거울 일이 없었음을 말한다.
고난으로 점철된 생애를 기억하는 시인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 엎드려 이 시를 쓰는 것이다.
시는 개인사이다. 그러나 모든 개인 사는 필연적으로 민족사에 연결된다.
마침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가 금강 산에서 열리고 있다. 저기엔 또 얼마나 많은 서럽고 그리운 사연들이 와글 와글하겠는가. 얼마나 오랜 목련과 바람이 와서 서로를 보듬고 그렇게 간절한 북과 남이 서로 엎드려 울고 비비고 있겠는가.

▲ 정학명 시인

 

 

 

 

 

 

 

※정학명 시인은 산남동 부영아파트 정문 맞은 편에서 화원(가람식물원)을 운영하고 있는 꽃집 사장님이 기도 합니다. 10여년 전 원흥이방죽 느티나무 아래에서 시회를 열었던 시인이며, 마을신문을 초기부터 사랑해 주시는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합니다. 화초 이야기를 청했더니 행복한 시 읽기로 화답해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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