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27. 남북 정상 회담에 이은 2018. 6. 12. 북미 정상 회담으로 그 어느 때보다 남북 평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우리는 아마도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사건을 동시대에 살면서 목격한 사람들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정도나 평가하는 관점은 저마다 자신의 삶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나는 문득 한참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700만 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 ‘1987’로 더욱 부각된 1987년, 한국사의 거대한 변화를 이끌었던 그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전체 학생수가 100여 명 정도 되는 작은 시골 학교에는 1987의 분위기가 올 정도는 되지 못했다. 6월이 되면 이전처럼 전교생이 집합한 운동장에서 6.25전쟁을 기념한 반공웅변대회가 있었다. 나는 1년 선배가 교내에서 우승하여 학교 대표로 시 대회에 나가서 우승하고도 대회까지 나가서 3등한 것을 알고 있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처럼 작은 시골 학교에서는 어리둥절할 정도의 수상이었다. 이후 학교 선생님들은 시골 학교에서도 가능한 일이라는 자신감을 가지셨던 모양이다. 나름대로의 노하우도 생기셨던 것 같다. 또 누군가 다시 그 계보를 이어 봐야 하지 않느냐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정작 우리들은 뭐가 뭔지 잘 몰랐다. 해 본 적도 없는 웅변은 그 선배의 모습을 시늉내서 선생님이 작성해 주신 웅변 원고를 외워 소리를 크게 지르면 되는 것인지 알았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치면서 무참하게 죽어간 이승복 어린이처럼 투철한 반공, 승공 정신을 가지고....’라는 내용의 원고를 외우고, ‘소리 높여 외칩니다!’에 맞는 힘찬 팔 동작을 구성하였다. 한껏 소리를 질러 교내 우승을 하고, 시 대회 우승까지 하여 도 대회를 위해 처음 청주에 왔던 기억이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후에 급격히 사라진 반공웅변대회의 내용은 상당히 선동적이고 왜곡된 것이 많았다. 그러나 정작 나는 대회 취지와는 다르게 웅변 원고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어떤 말에 소리를 더 높여야 하는지에 신경을 온통 쏟았다. 선생님의 주문도 그랬다. 심사위원의 눈에 드는 힘찬 목소리와 팔 동작이 필요했다.
 중,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더 이상의 웅변대회 참여는 없었다. 북한 공산당을 늑대나 이리떼로 묘사하던 내용도 사라졌다. 수업 시간에 알게 된 남북 분단의 역사는 그저 시험을 위한 암기 사항이었고, 시험이 끝나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에게 생각해 볼 주제가 되지 못하였다. 대학생이 되고서야 교과서 외의 책도 읽고, 선배들과 대화도 나누고, 혼자 사색해 보기도 하면서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판단 기준이 생겼다. 대학생이 되고 시골에 내려가 연로한 부친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한국의 현대사에 대한 견해차가 있음을 알았다. 6.25전쟁에 참전하신 부친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제 강점기의 설움, 6.25전쟁의 참혹함, 보릿고개의 배고픔, 새마을운동의 붐으로 시골 마을의 길이 넓어지고 도랑이 정비되던 모습을 이야기하셨다. 가난한 소작인에서 차츰 논밭을 사 자작농이 되어 자식들을 대학교까지 뒷받침할 수 있었음에 뿌듯해 하셨다. 고단한 일이 그치지 않았지만 나아지는 삶을 뒷받침해 준 당시 국가는 고마운 존재였다. 그러한 국가에 대항하는 것은 오히려 정의로운 것이 아니었다. 어느덧 작고하신 부친과 공유했던 일상을 떠올리며 회상에 젖고, 한 사람의 남편과 두 아이의 아빠로 바쁜 삶을 살아가는 나이가 되면서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셨던 부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되살아나곤 한다. 나의 가치관은 시간이 가면서 더 선명해졌지만 부친의 일생과 함께 한 한국의 현대사를 바라보면서 부친의 역사관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통일은 대통령의 발언으로 ‘대박’ 사건으로 부상한 적이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에는 믿기지 않던 일이 2018년 쓰나미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제 우리는 통일이 가까이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번영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한다. 북한의 무궁무진한 자원, 값싸고 질 높은 노동력, 유럽까지 대륙을 통해 가는 철도를 이야기한다.
 2018년 나는 과거 혼돈의 시대에 백범 김구 선생님이 하신 말씀대로 우리나라가 되길 기대해 본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 이성구(온리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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