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 읽기

 혹자는 시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시가 가장 대중화된 시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그러나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틈만 나면 여행을 가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집을 꾸미고 쇼핑을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쓸쓸하고 허전하며 상처받고 외롭습니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청춘의 한 시절 우리는 누구나 시의 영혼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영혼의 맑은 호숫가에 앉아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던 그 때. 호기심과 경탄으로 가득차서 세계를 바라보던 그 때를 생각하면 행복의 비밀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세계는 원래 생각보다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오직 발견하는 자에게만 향유되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너무 바삐 생을 소비하느라 우리 곁을 지나가는 저 별과 꽃과 바람의 이야기를 미처 듣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의 생과 결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대개는 무지하지요.
 시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것은 마치 금광을 뚫는 것처럼 위험과 노력을 동시에 요구합니다. 그렇게 시인은 혼신을 다해서 누가 알아주든 말든 자신의 갱도를 뚫고 가 새로운 세계를 독자 앞에 보여줍니다.
 그리고 여기,
 생의 한 토막을 툭 잘라 던져놓은 듯한,
 그렇게 슬프고도 아름다운 노을 같은 한 편의 시가 있습니다.

장미의 내부
                             최금진

벌레 먹은 꽃잎 몇 장만 남은
절름발이 사내는

충혈된 눈 속에서
쪼그리고 우는 여자를 꺼내놓는다

겹겹의 마음을 허벅지처럼 드러내놓고
여자는 가늘게 흔들린다

노을은 덜컹거리고
방안까지 적조가 번진다

같이 살자
살다 힘들면 그때 도망가라

남자의 텅 빈 눈 속에서
뚝뚝, 꽃잎이 떨어져 내린다

      - 시집『황금을 찾아서』(창작과비평사,2011)

 시는 언어의 경제성을 생명으로 합니다. 함축이야말로 시가 오래도록 간직해온 미덕이지요. 시가 산문과 구분되고 독립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 시는 시의 그런 특질을 잘 보여줍니다. ㅡ벌레 먹은 꽃잎 몇 장만 남은 절름발이 사내ㅡ라는 간명한 진술은 심상으로 전환된 사내의 상처 입은 순정을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충혈된 눈 속에서 우는 여자는 그의 장미입니다. 그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벌레 먹었습니다.
 노을은 덜컹거리고 방안까지 적조가 번진다ㅡ는 진술을 통해 우리는 사내의 거주지가 바다에 면해 있으며 바람이 몹시 불고 노을이 붉은 저녁이며 누추한 집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 상처 입은 사내의 처연함이 방바닥에 길게 드리워진 풍경을 보세요. 참으로 경제적인 말의 힘이란 이런 것입니다. 말 속에 숨은 긴 여운과 함의.
 그리고 이어지는 직설 ㅡ같이 살자. 살다 힘들면 그 때 도망가라ㅡ 남자는 이미 돌아선 여자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절망적입니다. 이 때 말은 어떤 손가락과 같습니다. 오를 수 없는 절벽을 기어오르는 손가락 말입니다.
 ㅡ남자의 텅 빈 눈 속에서 뚝뚝, 꽃잎이 떨어져 내린다ㅡ는 그래서 그 상처난 사랑의 심상인 장미가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며 눈물이 됩니다.
 이미지는 언어가 되기 전의 풍광입니다. 그것은 그래서 줄기세포처럼 분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시는 언어 이전을 탐색하는 장르입니다. 아직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우리는 그 여행 속에서 낯설고 고혹적인 뜻밖의 세계와 만나고 공감합니다. 그 이후 시는 쓰여집니다. 좋은 시는 예민하며 따뜻하고 영민하며 날카롭습니다. 그것은 불화로 가득한 세계와 우리를 연결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시를 읽는 행복입니다.

▲ 정학명 시인(산남동 가람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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