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두봉을 가꿔 온 곽한균 씨의 소박한 희망

  4월 21일 오후, 분평계룡리슈빌 아파트 맞은편 주택의 차고지에서 ‘4회 아름다운 잠두봉 우리동네 골목길 展’ 개막식이 열리고 있었다. 참석한 주민의 말씀을 들어보니 작년까지만 해도 잠두봉*에서 열리던 행사였는데, 올해는 잠두봉이 개발로 사라지는 바람에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1년 전만 해도 푸른 숲을 자랑하던 잠두봉 자리에 포크레인과 불도저 몇 대가 힘겹게 서 있었다. 서둘러 아파트를 지으려고 쉴 새 없이 숲을 파헤치느라 힘든 듯 … 그것들이 지친 만큼 잠두봉의 숲은 이미 사라졌고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설 자리가 생겼다.

▲ 2018년 제4회 아름다운 잠두봉 개막식장. '아름다운 잠두봉-우리동네 골목길 展'은 2012년부터 잠두봉 인근의 거리에서 열린 미술 전시회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개막식은 잠두봉 숲속에서 열었다. 하지만 올해는 잠두봉이 개발되어 차고지에서 개막식을 진행했다.
 
▲ 1년전까지만 해도 푸른숲을 자랑하던 잠두봉 자리에 포크레인과 트럭이 서 있었다.ⓒ이재갑 화가

  전시회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 대부분은 잠두봉이 통째로 개발된 것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표명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곽한균 씨의 사연이 있었음을 이재갑 화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되었다. 청주교육대 후문 근처에 개인작업실을 두고 있던 이재갑 화가는 매일 아침 잠두봉에서 산책을 하다가 한 주민이 꽃과 나무를 가꾸며 잠두봉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평소 골목문화에 관심이 많던 이재갑 화가는 그 주민과 함께 ‘아름다운 잠두봉- 우리동네 골목길 전시회’라는 주제로 마을주민들과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문화축제를 열게 되었다. 그 때가 2012년이었고 그 주민이 바로 곽한균 씨였다. 이재갑 화가는 회고한다. “곽한균님이 안 계셨더라면 이런 아름다운 골목 문화축제는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 곽한균 씨가 직접 만든 솟대와 나무의자. 아름다운 잠두봉과 골목길을 그곳에서 꽃을 심고 솟대를 만들고 나무의자를 만들었던 곽한균 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재갑 화가

  잠두봉을 가꾸는 예술인들은 ‘제4회 아름다운 잠두봉 : 우리동네 골목길 展’의 주제를 ‘잠두봉의 귀환-빛과 소금’으로 정했다. 잠두봉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20여 년 동안 쉼 없이 꽃과 나무를 가꾸며 골목길을 아름다운 공간으로 빚어낸 곽한균 씨의 순수한 열정과 그가 피워낸 사람 향기와 정이 되살아나길 바라는 절박함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당장 곽한균 씨의 보금자리인 집마저도 잠두봉 개발로 인해 절반을 자동차 도로로 내주어야 할 판이다. 잠두봉 개발은 거기에 식생하는 나무와 풀, 꽃과 동물들만 사라지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잠두봉과 조화롭게 아름다운 골목을 만들어 오던 사람들마저도 내쫓고 있는 것이다. 집조차도 반쯤 헐리게 될 처지에 놓인 곽한균 씨의 소망은 의외로 소박하다. “사는 곳이야 어디든 상관없지만 이 자리에서 그저 20여 년 동안 해 오던 일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인근 지역주민들은 때마침 열리는 지방선거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정치와 행정이 힘을 발휘하여 곽한균 씨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이 이뤄지길 말이다. 잠두봉 자리에 아파트가 완전히 들어서면 이전과 같은 형태로 잠두봉 골목길이 부활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곽한균 씨가 자신의 손으로 잠두봉 골목길의 정취를 재현할 수 있게 되기를 지역주민들은 간절하게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 '잠두봉을 지키는 예술인'들과 지역 주민. 이들이 배경으로 찍은 건물이 곽한균 씨의 집이다. 하지만 곽한균 씨의 집은 도로 건설로 곧 허물어질 예정이다. 잠두봉 개발은 거기에 식생하는 나무와 풀, 꽃과 동물들만 사라지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잠두봉과 조화롭게 아름다운 골목을 만들어 오던 사람들마저도 내쫓고 있는 것이다. ⓒ 조현국

  *잠두봉(蠶頭峰) 각주: 행정구역상 청주 산남동과 분평동 경계에 있다. 높이 101m. 산의 모양이 누에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일명 ‘누에머리끝산’이라고도 한다. 풍수상으로 누에는 뽕잎이 있으면 다른 것에 기운을 쓰지 않고 뽕잎만을 먹는 데 전념한다고 하여 잠두봉 인근의 마을에는 뽕나무 숲을 조성해 두었다고 한다. 현재 아파트 건설로 잠두봉의 원래 모습은 볼 수 없다. 산의 아래쪽에 청주교육대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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