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내리던 날, 아들을 학교에 태워다 주는 길.
아들 : 엄마 좋아하는 단풍길이 이제 없어졌네요.
엄마 : 그러게. 이제 너두 진짜 고3이네.
아들 : 윽. 헐~ 

단풍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로하는 아들의 마음이 당최 보이질 않았다. 예비 고3인 아들과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는 대화 따위는 없는 것일까?  아들을 보는 마음 한켠이 늘 무거웠던 터라 며칠 전 아들과 나눈 이야기를 꼭 기억해두고싶다.
엄마 : 아들~ 넌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말야.
아들 : 음, 파일럿이요.
엄마 : 그래? 1학년 때는 파일럿 되고 싶댔지. 근데 왜 파일럿이 되고 싶은 거야?
아들 : 뭔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고가 나거나 위험할 때 사람들에게 힘이 돼 주잖아요. 든든하고 멋있어요.
엄마 : 그러니까,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고 싶은거구나?  사람들이 든든해 하는 사람?
아들 : 네. 예전에 여행갈 때 기류가 불안정했을 때요. 그 때 막 무서웠는데, 기장이 방송하는 걸 듣고 안심됐거든요.
엄마 : 아, 그 장면이 기억나? 넌 되게 마음에 남았나 보다.
아들 : 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정말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장이나 선장이.
엄마 : 그랬구나. 중요한 순간에 사람들을 돕고, 위기를 극복하도록 돕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는구나.
아들 : 네. 근데, 그건 꼭 뭐가 돼야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아빠만 돼도 그러니까요.
엄마 :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들 : 제가 아빠가 되면 가족들한테 그런 존재가 되겠죠. 다른 나라에 여행 갔을 때 아빠가 있어서 하나도 불안하지 않았거든요.  저 혼자 간다고 생각해 봤는데요, 진짜 겁날 것 같아요.
엄마 : 그랬어? 아빠가 너한테는 든든하고 믿음직한 존재였구나? 그래서 너도 아빠가 되면 가족들한테 그런 든든한 아빠가 되고 싶다는 거네?
아들 : 네. 그래야죠.
엄마 : 그래, 네가 정말 바라는 건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든든하고 믿음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구나.
아들 : 네, 얼마 전에 축구대회 나갔을 때요,  우리 반 애들이 전부 나만 믿는다고 그랬거든요. 그 때 진짜 기분이 좋더라구요.
엄마 : 그랬구나. 완전 신나고 기분 좋았겠다.
아들 : 네, 그런데 어후 부담도 그냥...
엄마 : 부담됐구나? 엄청 부담됐었나보다.
아들 : 저 그런 적 처음이에요. 경기 딱 시작하는데 어후~ 어떻게든 연결해서 득점해야 겠다는 생각 뿐이 안나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하나도 못했어요.
엄마 : 그랬어?  진짜 부담됐나 보다.  생각대로 안돼서 실망스러웠겠다.
아들 : . 너무 긴장해가지구 그냥.

엄마 : 긴장되고 부담됐겠다. 그럴 만 하지. 모두 너만 믿는다 했으니. 하나도 못했다 싶었으면 위축되고 애들 보기 불편하지 않았어?
아들 : 근데 애들이 다 잘했다고 해주더라구요. 더 이상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위로해 줬어요. 다 알아주더라구요, 열심히 한 거.

엄마 : 진짜? 안심됐겠다. 애들한테 고맙구.
아들 : 그렇죠. 하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저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엄마 : 야~ 울 아들 쫌 멋진데? 네가 바라는 모습대로 살고 있는 거잖아. 친구들에게 든든한 존재로 최선을 다한다니까 말야. 엄마 말 듣고 어때?
아들 : 제가 쫌 멋지죠.

아들의 입꼬리가 실룩 올라간다. 좋은 모양이다. 기특하다. 안심되고 기쁘다.
잠깐 파일럿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땐 그저 스쳐지나가는 꿈같은 거라 생각했다. 그 속에 담긴 아들의 마음을알게 된 것이 반갑고, 그 마음처럼 지금 살아가는 있다고 여겨지니 뭉클하고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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