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등을 준비했던 고시생이라면 한번쯤 읽었을 만한 책이 있다. 고시생들의 바이블인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각종 고시의 합격수기를 모아 놓은 것인데, 대부분 수석이나 최연소 합격자들의 글이다. 나도 고시공부를 시작할 즈음에 처음 접했는데, 고시공부 중간 중간에 지치거나, 특히 1차시험에 떨어져서 시험을 포기해야 할 지 고민할 때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과학자’였다. 그 당시 ‘마징가’나 ‘미래소년코난’ 등 만화영화의 영향이었다. 그러다 중학교 때는 ‘축구선수’로 바뀌었다. 그 당시 동네 친구들과 놀 만한게 구슬치기 아니면 축구였는데 하다 보니 재미가 있어서 중1때 자원하여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예체능이 그렇듯이 돈이 많이 들고, 체벌도 심하고, 훈련도 창의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중3때 그만두었다. 고등학교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 졸업할 때 운 좋게 은행에 취업했다.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다녔지만 그 당시에는 ‘고졸’과 ‘대졸’의 차별이 심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래서 1년 후 그만두었다. 그러다 우연히 TV로 ‘5. 18.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체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 속은 기분이 들었다. 교과서 말고 진짜로 있었던 숨겨진 역사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꿈이 생겼다. ‘역사학도’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군대 갔다 와서 대입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에 우리가 살고 있던 전셋집이 경매가 되어 보증금 한 푼도 못 건지고 길거리로 나앉게 되는 일이 생겼다.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서 후순위였기 때문이다. 2-3달 어머니와 변호사 사무실, 법원 등을 전전하며 방법을 물어봤지만, 대답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이 스물여섯 먹도록 전입신고 하나 할 줄 몰랐던 내가 부끄러웠다. 내 꿈을 다시 수정했다. ‘법대’로 틀었다. 나같이 법을 몰라서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이 없게끔 하겠노라는 거창한 목표로 나이 서른에 법대에 진학했다. 2학년 때 '사시‘에 도전해서 7년 만에 합격했다.
  어느 덧 변호사 7년차다. 그 동안 ‘카드사 개인정보유출 소송’이나 ‘청주시 단수사태’ 등 공적인 사건을 처리하면서 나름의 성과와 보람도 있었다. 그런데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어느 사람을 대신해서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검투사’다. 소송이 화해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한쪽이 이기면, 한쪽은 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관리하고, 어떤 내용이든 그 ‘결과’을 내야하고, 때로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소재도 뒤따른다. 그래서 그 긴장감이 심하다. 내가 변호사 초짜일 때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사건의 자기화’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모든 사건을 마치 내 사건처럼 감정이입 하다보면 사건을 객관적으로 못 보고, 상대방을 물어 죽이려는 ‘싸움닭’이 된다는 것. 그러다보니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것이다. 나도 초기에 그렇게 했다. 그로다보니 소송결과에 따라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했다. 거의 조울증 수준이었다. 사람 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람사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
  요즘 귀순병을 치료하여 국민적 영웅이 된 이국종 교수는 어느 인터뷰에서 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의대 자체를 안가고 싶다고 했다. 사람의 목숨을 최전선에서 24시간 맡아서 ‘生’이든 ‘死’이든 어떠한 결과를 내야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져야 하니, 육체적으로는 물론이고 심리적, 정신적으로 얼마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실제로 한 눈이 멀었다고 한다.
  요즘 퇴근하여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 날에는 하늘의 ‘별’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유튜브에서도 주로 ‘별’에 관한 것을 본다. 지금 나에게 어릴 적 순수함은 기억 한편으로 치워져 있다. 매일 야근에, 술자리에, 사람사이에서 울다가 웃다가, 조울증처럼 그렇게 지낸다. 그래서 다시 태어난다면 이 길을 가고 싶지 않다. ‘과학자’가 되고 싶다.
   ‘별’을 연구하고 싶다. 내 생애 처음으로 가졌던 꿈.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최우식 변호사(사람&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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