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대전에서 한 여중생(16)이 건물 옥상에서 투신했다. 무엇이 그 여중생을 그 지경까지 내몰았을까? 언론 기사와 필자의 경험을 종합하면 팩트는 대략 이렇다. 올 해 2월경 여중생은 22살의 남자와 소위 조건만남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그 남자의 변태적, 폭력적인 성적 학대가 있었고, 그런 모습을 그 남자 혹은 여중생의 반친구가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그 동영상을 지속적인 만남 또는 변태적인 성행위 요구를 위한 수단으로 협박했다. 이후 그런 사실이 학교측에 알려졌고, 여중생의 부모는 그 반친구와의 격리조치(반분리)를 요청하였지만, 그 반친구가 그런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아직 경찰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학교측은 임시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경찰조사에서는 여중생이 조건만남을 해왔기 때문에 피해자로 보지 않고 오히려 무고죄를 들먹이며 여중생을 겁먹게 하였다. 그 피해 여중생에 대한 심리적, 법률적 지원을 위한 해바라기센터나 피해자국선변호사가 있었지만, 그 피해 여중생에게 심리적인 안정과 법률적 지원이 미흡했다. 결론적으로 피해 여중생에게 학교, 교육청, 경찰, 해바라기 센터, 국선변호사 등 국가 시스템이 무용지물이었다.

필자가 4년간 일선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학폭위원으로 또 일반 변호사 업무를 통해서 학폭 사건을 다룬 경험에 비추어 판단해보면, 학교측은 가해자가 그런 사실을 부인하고, 그에 대한 증거가 없으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우리 헌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고 또 강제수사를 할 권한이 학교에는 없기 때문이다. 또 학교측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어느 한 편을 위할 수도 없다. 그냥 ‘기계적 평등’이다. 경찰은 다르다. 강제수사권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그리고 어느 사건보다 ‘신속하게’ 진상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이런 성관련 사건은 이를 수사하는 일선 경찰들의 오랜 편견이 문제이다. 이 사건에서 피해 여중생이 돈을 매개로 그런 성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폭력적, 변태적인 성행위까지 동의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초기 몇 번의 만남은 합의에 의한 것이더라도 폭력적, 변태적인 성향이 드러난 어느 시점부터는 적극적으로 ‘강간죄’로 판단해야 한다. 물론 강간죄는 폭행.협박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우리 판례가 성인보다는 완화하여 판단하고 있고, 폭행.협박보다 수위가 낮은 ‘위력’에 의한 미성년자 간음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그 여중생에게 경찰은 ‘꽃뱀’으로 보아 ‘무고죄’ 혹은 ‘거짓말탐지기’ 운운하였으니 그 당시 여중생이 느꼈을 공포, 당혹, 좌절감이 어땠을까 충분히 짐작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해바라기센터나 국선변호사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소위 ‘학폭피해자를 위한 전담변호사’의 도입을 제안한다. 현재 운영되는 국선변호사는 ‘성폭피해자’에 한한다. 일반폭력, 지속적 괴롭힘, 왕따 등은 제외된다. 물론 법률구조공단에 국선 변호사, 교육청에도 ‘학폭전담 변호사’가 배치되어 있으며, 돈만 있으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 그러나 학폭 피해자가 그런 국선변호사들에게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교육청 학폭전담 변호사는 학폭 교육, 홍보에만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맞벌이 부부나 결손 가정은 자녀에게 제대로 신경 쓰지도 못하고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도 없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학폭피해자를 위한 변호사’도 경우에 따라서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또 예산문제도 포함된다. 결국 ‘가능성’의 문제이다. 피해 학생 대부분은 그런 사실을 부모에게 털어놓지 못한다. 학교측은 어떻게 알게 되어도 진실이 명확히 밝혀질 때까지는 중간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경찰도 중립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경찰이 피해자를 위한 기관이라고 생각하는데, 경찰은 어느 편을 유리 혹은 불리하게 취급하여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은 ‘편파수사’이고 가해자에게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로지 ‘피해자의 편에서’ 실질적, 사회적으로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은 누구인가? 부모도, 학교도, 경찰도 아니다. 그나마 ‘변호사’이다. 물론 제도가 도입된다고 그런 문제가 다 해결되진 않는다. 실제로 활동하는 변호사 개인의 의지, 역량에 달린 문제이다. 대전 피해 여중생에게도 국선 변호사가 있었다.

최근에 박준영 변호사가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을 위해 재심재판을 거쳐 최종 무죄를 이끌어냈다. 제도가 도입되면 더 많은 변호사가 ‘학폭피해자를 위한 변호사’로 활동을 할 것이고 그러면 더 많은 피해자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보호와 지원을 해줄 수 있다. 그러면 최소한 그런 극단적인 결과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 질 것이다. 그 가능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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