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빵을 배울 때부터 내가 품었던 꿈은 내가 직접 밀을 생산해서 빵을 만드는 거였다. 우리밀로 빵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런 생각은 없었지만 전남 구례에 계신 월인정원 선생에게서 우리밀로 빵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구례 들에 펼쳐진 밀밭은 꿈이 되었다.
거기서 오랫동안 밀농사를 자연농법으로 지으시는 홍순영 농부를 만나 뵙고 그 꿈은 더욱 굳어졌다. 그분은 밀농사를 당시 10여년 이상 지으시던 분이며 논에서 밀과 벼를 이모작으로 하신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고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땅 270평으로 시작한 농사는 그의 천직이 되었다.
그는 화학농법으로 버린 땅을 새로 살리고 지키는 길은 “순환농법”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순환농법은 지천에 자라는 풀을 베어 제재액으로 만들어 땅에 뿌려준다.
그 외에 미강과 축분등에 미생물을 발효시킨 그만의 유기농 비료를 만들어 땅에 준다. 이러한 그의 순환농법에 의한 밀농사가 아니었으면 우리밀이 땅과 고유한 작용을 하여 그 땅만의 고유한 맛을 만든다는 믿음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홍순영 농부의 밀은 그의 땅이 만들어낸 고유한 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근처의 다른 농부들의 밀과 그의 밀이 다른 이유이다. 땅을 살려 그 땅이 밀을 키워낸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월인정원 선생의 빵에서 태어났다.
그분은 빵은 밀을 통과해서 땅과 연결되어 있음을 믿고 그것을 자신의 빵에서 실현시킨 분이다. 내가 배운 빵은 바로 이러한 빵이다. 땅이 밀을 키워내고 그것이 빵이 될 때 그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는 빵이다. 그래서 우리는 빵을 그저 모든 빵덩어리가 전체의 한 부분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빵은 각 덩어리마다 고유한 자신의 특성과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 믿음으로 나도 밀농사를 지을 날을 고대하고 있던 어느날, 가덕에 있는 성보나의 집 경내에 있던 배나무 밭을 없애고 커다란 새 밭이 탄생하였다. 수녀님(성 보나의 집은 대한성공회 성가수녀회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여성중증장애인 시설이다.)께서 이 밭으로 무엇을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나는 대뜸 “밀을 심으시죠”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바로 “그럼 신부님이 심으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신나서 그러겠다고 대답했는데 조금 지나자 겁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 밭을 자세히 보니 완전 돌밭이었다. 그래도 나는 밀을 심겠다고 나서서 실행에 옮겼다. 첫해에 밀을 심으려고 로터리를 쳤는데 돌 때문에 날만 부러지고 제대로 흙을 부수지 못한 채 밀을 뿌렸더니 밀은 풀과함께 자라서 수확할 수가 없었다. 실패였다.
그래서 돌을 골라내는 작업을 위해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4-5일동안 작업을 했지만 골래낸 돌이 돌산을 이루었어도 밭에 돌은 그대로였다. 정말 돌이 많은 그 밭에 어찌어찌하여 가신히 거름을 주고 밀을 뿌려 올해 처음으로 밀을 수확하였다.
겨우내 밀싹을 고라니 가족이 뜯어먹고 살이 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타들어갔다. 그래도 밀은 무럭무럭 자라 봄에는 밀이 밭을 푸르게 뒤덮더니 큰밭을 가득히 채웠다. 첫해이고 올해 특히 심했던 가뭄 덕에 수확량은 턱없이 적었지만 밀을 수확하였다. 내년도 씨앗을 남기고 조금 남은 밀을 함양의 산아래제분소에 부탁하여 전립분 통밀을 내 손에 쥔 것이 지난주였다.

지난 주에 나의 밀이 도착해서 그 밀을 빵으로 만들었다. 전립분의 특징이 고스란히 빵에 나타났으며 나의 바램대로 거친 돌밭의 기운이 느껴지는 빵이 구워졌다. 내가 직접 농사지은 밀로 그레이스의 부엌에서 빵이 나온다는 이 벅찬 느낌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다.  
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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