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시간, 올 사람 없는 우리 집에 초인종이 울린다. 인터폰 화면 속에 가스 검침표를 내미는 아주머니를 보는 순간 난감했다. 청소는커녕 아침 먹은 설거지도 미처 하지 못하고 기한이 급한 서류를 정신없이 작성하고 있던 참이었다. 예전 같으면 다음에 하겠다고 했을 텐데, 잠시 망설이다 이내 현관문을 열어드렸다. “마실 것 한잔 드릴까요? 지저분해서 민망하네요.” 이런 저런 말을 건네는 나에게 “사람 사는 집이 다 그렇죠.” 수더분하게 웃어주는 검침원 아주머니가 친근하다.
청소가 되지 않은 집에 방문객을 들이는 것처럼 준비되지 않은 수업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아직도 주저되는 일이다. 일상이 그러하듯 수업 또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삶의 일부임을 모르지 않는데도 말이다.

예상치 못한 방문객을 맞으며 한창 의욕 넘치던 신규 교사 시절, 좀 더 좋은 수업을 하고 싶은 욕심에 수업을 공개 촬영하는 교육과정평가원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이 떠오른다. 서울에서 수업을 참관하는 연구진이 내려오고 대형 카메라에 거창한 마이크 시설까지 동원되었다. 그 당시 모둠 수업이니 협동 학습이 선풍적인 관심을 끌고 있던 때였는데, 나는 일부러 보란 듯이 강의식으로 수업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학교의 상황과 여건은 고려하지 않고 유행처럼 바꿔가며 제시되는 수업 모델에 반발심이 들었다. 무엇보다 실제 수업은 강의식인데 공개 수업에서 마치 연극하듯 수업을 하는 것이 아이들 보기 부끄러웠다.

생각해 보면 교사의 수업을 평가, 통제하던 오랜 관리적 관행 속에서 민낯과 같은 일상의 수업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교사에게 수업을 공개하는 것은 풀 메이크업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행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수업을 바꿔가고자 하는 선생님들의 고민은 멈춰 있지만은 않았다. 얼마 전 청주교육대학에서 수업을 연구하는 단체를 한 자리에 모은 ‘청주교사교육포럼’이 열렸다. 한국, 미국, 일본, 대만의 교육 전문가들의 강연과 전문성 신장 워크숍, 수업혁신 심포지엄과 수업 이야기 토크콘서트가 펼쳐졌다. 포럼이 인상 깊었던 것은 어느 하나의 교육론이나 일률적인 수업 형태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수업 이야기를 꺼내놓고 함께 고민하는 만남의 장(場)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아이들의 특성처럼 교사도 수업도 각기 다른 제 빛깔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수업을 고민하고 있는 많은 선생님들과 친구가 되는 든든한 시간이었다.
나또한 지난 학기부터 일상의 수업을 영상으로 담아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교실은 어수선하고 아이들은 시끌시끌하지만 생생하고 살아있다. 민낯으로 나선 동네 산책길에 옆집 어르신도 만나고 졸업한 녀석들도 만나는 것처럼 아이들, 부모님, 동료 선생님들과 수업을 열어 보이고 나누는 것이 조금 더 편안해지면 좋겠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리얼 버라이어티 《효리네 민박》을 보면 화려한 무대 위의 카리스마 넘치는 디바가 아닌 화장기 없이 소탈한 일상의 부부를 만날 수 있다. 무대와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신기하고 흥미롭다. 수업과 일상의 경계도 그렇게 조금씩 낮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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