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임미사 후 윤병훈 신부가 꽃다발을 받고있다.

산남동, 구룡산(164미터)의 남쪽에 위치한 양지의 마을은 양서류, 특히 두꺼비가 많이 서식했던 환경이 건강한 장소였다. 어느 날, 산과 들이 파헤쳐지고 기계 소음에 놀라 양서류들이 들로 산으로 흩어졌다. 물론 도시계획이 있었겠지만 생태계가 고려되지 않은 난개발로 환경단체들의 저항을 받았던 곳이다.

그렇게 산고를 겪고 마을이 조성된 지도 십 수 년이 지났다. 내가 산남동에 찾아온 것은 2013년 정월이었다. 벌써 4년 반을 뒤로하고 원로 사목자가 되어 은퇴미사를 끝으로 사목생활을 마감했다. 한내들, 퀸덤, 칸타빌 1, 푸르지오, 리슈빌, 현진에버빌, 칸타빌 2차, 부영, 그리고 개인주택들이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다.

청주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을 뽑으라면 ‘산남동’이 아닐까? 마을 주민들의 등산로가 있는 구룡산 자락, 아파트를 끼고 도는 공기 청정한 산책로, 정의를 세우는 법원, 검찰청이 있고, 조금은 떨어져 있지만 교육의 심장부 도교육청과 지역의 교육지원청, 어린이들과 학생들의 성장과 성숙을 촉진하는 초, 중등학교가 안정되게 자리 잡고 있다. 상가지역은 상권이 살아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제법 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자리 잡고 안정된 지역이 되자 고통 받던 집나간 양서류들이 자기 집을 찾아 보금자리로 돌아온 모양이다. 사람이 안정되니 생태계 전반이 되살아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이제 모든 면에서 건강하게 살아 있으니 살아있는 남쪽의 마을은 ‘산남동’답게 이름값을 하게 되었다. 나는 산남동에서 4년 반을 살면서 ‘청주의 강남‘ 이란 말을 자주 들었다. 강남하면 투기 목적이 뚜렷한 곳인데 그런 면에서 말하는 것일까? 아파트는 십여 년이 지나면 이동을 시작한다던데 성당 교우들의 이동을 보면 세종시로 전출을 많이 했으니 그런 투기 목적의 느낌도 들기도 한다.

산남동이 산의 남쪽에 위치했다 하여 산남동이 아니라 ’살아있는 남동’이 되어야 한다. 자칫 산남동이 아니라 죽은 남동, ’죽남동‘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거리에 쓰레기도 넘쳐나고 하수구가 막혀 물 빠짐도 느리고, 개인주의 성향으로 ’아파트‘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데파트‘가 되기를 바라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가 막혀가고 있으며, 학원가는 학생들로 넘쳐나고 부모는 맞벌이로 여유로움을 잃어간다. 존재에 대한 목적이 실종되고 소유와 신분상승을 엿보며 수단이 목적처럼 착각하고 서로 모래알이 되어 비교하며 경쟁한다. 주택과 상가 사이, 학교와 상가들 사이 학생들이 빠르게 세속화되는 모습을 보게 되어 안타깝다.

이제 나는 나이 정년으로 사목일선을 떠나고 정든 삶의 터전을 옮겨 앉게 되었다. 떠나면서 산남동이 살아있는 남동으로 거듭 발전되기를 기도한다. “은총의 샘이신 주님, 산남동 두꺼비 마을에 사는 모든 이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어, 산남동에 사시는 모든 분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올바로 깨닫고 서로 힘을 모아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민주 시민으로써 그 몫을 다하도록 두 손을 모으겠습니다.” 청주에 다시 제 자리를 잡게 되면 교육파트에서 노하우를 살려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상담 역할을 하며 저도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잘 사용하며 행복하게 살겠다고 약속을 드립니다. 산남동 형제 자매님들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여러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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