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책을 읽다가 잠이 들고 우리 집과 담하나 넘어 산남초에서 들려오는 재잘재잘 아이들 소리에 일어나는 것이 올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다. 눈을 뜨고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뭉그적거리며 습관처럼 핸드폰을 열었다. 웬일인지 웹 사이트 메인 화면에 온통 학교와 선생님 기사로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웹 사이트 이름도 카네이션으로 꾸며져 있다.
아하, 오늘이 스승의 날이구나. 아이들에게 문자와 메신저로 메시지가 들어와 있는 것을 보니 좀더 실감이 난다. 실은 며칠 전 문득 올해 스승의 날은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아이들과 떨어져서 맞이하는 스승의 날이라 궁금했는데 막상 오늘이 되니 오히려 담담하다.
‘손으로 쓴 편지만 된단다. 학생 대표의 카네이션만 된다더라.’ 김영란법으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그저 하루 쉬게 해주면 장땡이라는 우스개 섞인 선생님들의 바람도 기사로 실렸다. 마음 한 편의 씁쓸함도 있지만 겪어야 할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허전함보다 담담한 심정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승의 날인 오늘, 마침 음성에 있는 행복씨앗학교를 방문하기로 일정을 잡아두었다. 음성군에 위치한 삼성중학교는 스승의 날을 맞아 특별한 시간을 준비했다. 선생님의 가족들을 학교로 초청하여 수업을 공개하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 할머니까지 총출동한 온 가족이 교실 뒤편에 나란히 앉아 수업을 참관했다. 사랑하는 딸의, 언니의, 손녀의 수업을 지켜보는 가족들 표정이 더없이 흐뭇해 보인다.
아이들은 시끌시끌 모둠별로 토론하고 발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이들의 밝은 모습에 교실은 푸른 바다 속 같다. 선생님은 아이들 곁을 유영(遊泳)하듯 미끄러져 다니신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까지 한 폭의 그림 같다. 

수업 참관 후 다음 시간에는 직업군인인 선생님의 여동생이 아이들에게 진로 특강을 해주었다. 강의를 듣고 질문을 던지는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난다. 선생님 동생의 진로 특강이라니 탄성이 절로 나오는 참신한 아이디어다.
그동안 수업을 참관할 때 아이들에게 어떤 배움이 일어나는지 살피고 왜 배움에서 소외되고 있을까 고민하며 그저 아이들에게 눈길이 갔었다. 오늘은 선생님에게 마음과 눈길이 간다. 한 사람을 누군가의 딸로, 언니로, 손녀딸로, 오롯한 존재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참스승은 수업의 기법이 아니라 삶 자체로 가르친다 했다. 수업 속에 선생님의 삶이 있고 선생님의 삶이 교실 안에 녹아드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의 삶이 학교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선생님의 삶 또한 그러하길 바란다. 그래서 선생님의 가족과 함께 한 수업은 뭉클한 감동이었다.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별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 장석주

대추알이 붉게 둥글어져 가듯 아이들의 삶이 탱글탱글 영글어져 가길 바란다. 아이들의 모습이 그러하듯 선생님의 모습 또한 그냥 붉어진, 그냥 둥글어진 것이 아니리라. 스승의 날은 그런 선생님의 마음 한 자락 열어 실컷 이야기하고 만나는 그런 날이면 좋겠다. 만날 천날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봐 주려 노력하는 선생님이 아니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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