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덕중학교 졸업식 장면
겨울방학을 마치고 2016학년도 학사 일정이 나흘이면 끝이다. 며칠 후면 졸업이니 뭐 할 게 있겠나 싶지만 이것저것 정리할 것, 준비할 것이 산더미다. 일처리로 늦은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서둘러 저녁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방학이라 그나마 가족들 식사 준비가 여유로웠는데 개학과 함께 도루묵이다.
추운 날 몸 덥혀줄 메뉴를 고심하다 닭고기로 육수를 내어 국수를 말아 먹기로 했다. 가스레인지에 국수 삶을 물을 끓이고 한쪽엔 반찬으로 먹을 양배추를 데치고 제일 큰불에 익힌 닭고기를 찢어 넣고 냄비 가득 육수를 끓이기 시작했다.
달그닥 달그닥 냄비 소리가 나고 한참을 끓여 진한 국물을 내야겠다 마음먹는 순간 ‘퍽’ 소리와 함께 냄비 뚜껑이 튀어 올랐다. 냄비 가득 팔팔 끓던 육수 국물 절반이 내게로 쏟아졌다. 날벼락! 날벼락이 이런 거구나.
‘악’ 나도 모르게 지른 외마디 비명소리에 남편과 아들이 주방으로 쫓아왔다. 양손이 빨갛게 부풀어 오르고 온 몸이 국물 범벅인 나를 본 두 사람은 나보다 더 혼이 나간 얼굴이다.
얼른 찬물에 담그라는 남편의 비명에 가까운 재촉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세면대로 달려갔다. 찬물이라면 여름에도 질색팔색을 하는데 콸콸 찬물을 틀어 놓고 두 손을 연신 씻어냈다. 찬물을 온 몸에 뿌리는 것이 너무 힘들어 그냥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거울로 보이는 목의 붉은 상처를 보며 약해진 마음을 다잡는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찬물을 목에 부어댔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가라앉는 화상 환부를 보며 다행스러운 심정과 함께 내일 졸업할 우리 반 아이들이 떠오른다. 화상을 입으면 찬물로 씻어야 한다고 그렇게 많이 듣고 익히 알고 있던 터인데 실제로 화상을 입고 나서야 그 말이 새삼 마음에 새겨진다. 아이들에게도 배움이 그런 것일 텐데. 더 많이 경험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졸업을 앞둔 아이들에게 유난히 아쉬움과 미안함이 큰 한 해다. 내가 경험하는 인생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아쉬움도 커지는 듯하다. 그만큼 교사로서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와 바람이 커진 것이리라.
졸업식, 아이들이 직접 준비한 졸업 영상과 공연으로 식장이 꽉 찼다. 한 명 한 명 눈으로 마음으로 담는다. 일 년 내내 별 말 없던 무심한 열여덟 살 남자 아이들이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꽃다발을 내게 내민다. 이 무심함이 쑥스러움이라는 것을 일 년 동안 혼자 속으로 지지고 볶고 이제야 알겠다.
아이들의 무심함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싶다. 교사의 가르침보다 아이들의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을 함께 하고 싶다. 아이들은 한 걸음 한 걸음 배움과 성장으로 삶을 살아나가게 될 것이다. 그 길을 축하하는 졸업식 노래가 식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다음 주인공들이 올 때까지 텅 빈 교실 앞에서 새로운 길로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는 교사로 산다는 건 참 쓸쓸하면서도 찬란한 일이다. 드라마 속 도깨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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