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10여년 전과 달라 치과에 내원해서 아프니까 무조건 '이를 빼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경만 좀 죽여 달라'고 애원하듯 하는 환자들도 상대적으로 많이 늘고 있습니다. 현대 치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치아를 뽑고 난 자리에 인공 치아(Implant)를 심는 치료술도 있습니다. 치료비가 상당히 고가이긴 하지만 과거보다 성공률도 차츰 높아 가고 있습니다. 하물며, 인공장기가 아니라 내 몸의 일부인 자연 치아의 뿌리가 남아 있다면 치료의 예후는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 상식입니다.
치아 뿌리 속에는 혈관과 신경 등이 들어있는 작은 신경관들이 있는데, 심한 충치나 세균에 감염되면 관속에 있던 혈관과 신경이 죽어 버리거나 부패하기 쉽습니다. 이 부패한 신경관을 깨끗이 한 다음 인공 폐쇄 물질로 밀봉하듯 채워 넣는 '근관치료술'을 시행하면 치아를 거의 기능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데 그 성공률도 90%가 넘습니다. 그러나, 아무 경우에나 무차별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잔뿌리만 남아서 혀끝에 너덜거리는 치아나, 치아를 감싸고 있는 뼈로부터 그 높이가 2mm이하로 짧아서는 안 되며, 어금니의 경우 치아우식증(충치)을 너무 방치하여서 치아 속의 뿌리가 갈라지는 분지 부분에 건강한 자연 치아 성분이 남아 있지 않으면 기능적으로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근관치료술을 적용하기 힘든 결정적인 예로는 치주염(잇몸병)이 원인이 되어 이가 아프고 흔들리는 경우인데, 치아 자체로서는 아무 이상없이 멀쩡하고 깨끗합니다. 이것은 통증의 원인이 치아 내부에서 생기는 치수염에 의한 것이 아니고, 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뼈와 주위조직에 생긴 돌이킬 수 없는 염증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발병 원인이 다른 것입니다.
울거나 불안해하는 어린이들에게 '아프지 않게 신경을 죽이자'는 은유적 표현에서 비롯된 오해인지는 몰라도 치료 과정에서 치수 조직을 '미라'화하거나 제거하는 술식은 있어도 신경을 죽이는 치료법은 없습니다. 평상시 치아나 잇몸 관리가 중요하며 1년에 한번 정도 구강 검진을 받는 것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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