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올바른 역사를 배울 수 있을까

▲ 출처_스포츠경향
한국사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이 커지는 가운데 지난달 28일,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 교과서의 현장 검토본이 공개됐다. 이날 교육부는 이준식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교과서 개발 경과 등에 대해 설명하고 현장 검토본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밝혔으며 편찬기준과 집필진 명단도 함께 공개할 예정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균형 잡힌, 잘 만든 교과서’라는 정부의 공언이 무색할 정도로 초보적인 사실 오류가 무더기로 나타났다. 공개된 국정 교과서에는 안중근 의사의 미완성 논책인 <동양평화론>을 자서전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통합 임시정부가 출범한 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직책이었던 '노동국 총판'도 '내무총장'으로 잘못 표기돼 있다. 또한 친일파의 범위를 지식인과 예술인, 경제인으로 국한하는 한편 군인과 경찰, 관료가 제외됐다. 고고학에서는 청동에 앞서 순동이 더 먼저 사용된 사실을 밝히며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금속도구가 청동기라는 문장이 대표적인 오류로 지적됐다.

이와 같은 사실 오류는 세계사에서도 발견됐다. 국정교과서에서는 함무라비 법전을 세계 최초의 법전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세계 사학계는 1970년대에 우르남무 법전을 발굴해 이 법전을 최초의 법전으로 보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에서 농경이 시작된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 역시 잘못 기록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동아시아에서는 서남아시아보다 농경이 늦게 시작되었지만”이라고 서술돼 있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남중국의 쌀 재배가 서남아시아의 농경 발생보다 최소 천 년 이상이 빠르다.

우려했던 편향성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교과서의 전체 분량은 줄었지만 현대사 영역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서술이 기존 교과서보다 3쪽 정도 늘어났으며, 특정 기업명을 교과서에 버젓이 기재해 재벌을 미화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새마을 운동과 관련해서는 농촌 환경 개선 성과와 세계 기록유산 등재 등을 부각시켰다. 정치 부분에서는 1971년도 국가비상 사태 선포는 안보를 위해 불가피했다는 식으로 기술했으며, ‘5.16 군사정변 혁명공약’ 전문이 처음으로 실리기도 했다. 또한 1948년 8월 15일을 기존 교과서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기술한 반면 국정교과서에서는 ‘정부’라는 단어를 빼고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표현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단순히 ‘정부 수립일’이 아닌 국가 자체가 1948년에 수립됐다는 입장을 설명했으나 1919년 임시정부 수립과 항일운동 등의 의미를 축소했다는 논란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대다수의 기존 검정 교과서가 평화의 소녀상 사진을 게재했으나 국정교과서에서는 수요 집회 사진만 있는 것으로 드러나 위안부 단체를 중심으로 더욱 민감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이처럼 사실 오류와 편향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국정교과서가 제대로 된 학습교재로 적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정부의 논리가 희박해지고 있다. 특히 학년 수준에 따른 구분 없이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 내용이 거의 붙여넣기를 한 듯 비슷하다는 지적도 제기됐고, 나열식 서술과 학생활동 중심의 구성은 빠져 실용적 학습교과서로는 낙제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집필진이 보수 성향 일색으로 채워졌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당사자 중 한 명인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이 국정화 과정을 이끈 것으로 알려져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국정교과서의 학교 현장 작용을 내년 3월이 아닌 2018년 3월로 1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23일까지 의견을 수렴하고 새 학기 수업을 고려해 12월 말까지 최종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이 공개되자 14명의 시도교육감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29일에는 전국역사교사모임이 불복종 운동을 선언했으며, 보수성향의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마저도 “국정교과서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교육부와 전국 시도 교육청의 갈등이 역사 과목의 학교 수업 편성권한 문제로 번지기도 했다. 이 영 교육부 차관은 필요한 경우 교육부가 시정명령과 특정 감사 등 교육현장의 정상화를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교육의 중립성을 규정한 교육기본법 6조를 언급하며 역사교과서 보조교재를 학교 현장에서 즉시 회수할 것과 위법한 대체교과서 개발을 즉각 중단할 것을 시도 교육청에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시민단체들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국정교과서를 통해 배울 수 있는지 미지수라는 견해가 등장하기도 한다. 논란에 싸여 있는 국정교과서와 이를 토대로 역사를 배워야 하는 학생들. 그 사이에서 교육환경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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