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든 새들처럼 조잘거리는 아이들과 만날 때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요즘 아이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예쁜지 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코를 흘리거나 머리에는 부스럼이 나서 머릿수건을 쓰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다. 아마도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 영양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요즘 아이들은 코는 커녕 먼지 한 톨 뭍혀 다니는 아이가 없을 정도다. 아이를 한 가정에 한 명이나 많이 낳아야 둘 셋 정도로 출산율이 떨어지다 보니 왜 안 그렇겠는가.

우스갯소리로 요즘 아이들을 6포켓 세대라고들 말하기도 한다. 친가 외가의 조부모와 부모, 어른 여섯 명이 한 명의 아이를 키우다보니 그 만큼 아이들이 용돈 얻어 쓰기가 쉬워졌다는 말일 것이다.

출산율이 떨어져서 어느 집이나 아이가 귀해졌다. 내 아이를 최고로 키우고 싶은 것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제는 좋아지고 아이가 귀하다 보니 뭐든지 풍족해졌다.

필요하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사주는 것이 요즘 젊은 부모의 세태다. 부모 대부분은 자녀를 칭찬하고 보상하면 자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격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나친 칭찬과 보상은 오히려 부정적인 상황을 만들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이는 귀해지고 노인의 인구는 늘어가고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이 나라의 역사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우리 기성 세대들이 해야 할 책임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가 후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중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사는 것은 정성을 요하는 일이고, 삶에 대한 진지하고 적극적인 성찰에 기반을 둬야 한다. 이는 감각의 과부하와 과도한 경쟁에 던져진 현대인이 실천하기 매우 어려운 삶의 태도라 할 수도 있다. 삶이 극단으로 치우칠 경우 우리에게 닥칠 많은 문제를 생각해 본다면 ‘중용’의 미덕은 과거의 화석으로 묻혀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귀한 자녀일수록 엄하게 키우라고 하시던 어른들 말씀이 생각난다. 남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녀 교육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난 후에야 가능한 일 일 것이다.

노인 여섯 명을 부양해야 할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책임감이 생기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진정한 대한민국의 웃음소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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