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의 시간을 정해 놓고 아이들과 지내는 것이 교사에게는 숙명 같은 반복이다 보니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느껴지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한 해 마무리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가을에 열리는 축제는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이 눈으로 확인되는 장(場)이다.

축제날, 우리 반 아이들은 격렬한 논쟁 끝에 결정한 무지개색 학급 티셔츠를 입고 기세등등하게 등교했다. 난생 처음 보는 오색찬란한 티셔츠에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저마다 다른 개성을 표현했다니 내심 신통방통하다.

학급 이벤트로 도너츠를 만들어 팔기로 한 우리 반 녀석들은 의욕만 앞설 뿐 준비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팔아야 할지 우왕좌왕이다. 결국 어머님들의 반죽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도너츠 판매가 시작되었다. 후라이팬 앞에서 꼼짝 안하고 도너츠를 튀겨내고, 꼼꼼하게 판매량을 체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신기하다.

평소에는 말이 없던 동하는 도너츠가 담긴 컵을 받아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세일즈를 한다. 낯선 아이들에게 가서 맛있으니 하나 먹어보라며 도너츠를 내미는 동하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넌지시 기분을 물어보니 처음엔 죽을 맛이었는데 할수록 자신감이 생긴단다.

다음날 체육대회. 학급 대항 2인 3각 경기에서 동하와 나는 짝이 되었다. 동하는 점심시간 내내 근심 가득한 표정이더니 경기 시간이 다가올수록 얼굴이 더 굳어진다. “긴장되는 모양이구나. 잘하고 싶은 마음인거지? 긴장할 때 잘할 수 있을까? 편안할 때 잘할 수 있을까?” 내 말에 동하는 씩 웃으며 숨을 크게 내쉰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고 마지막 주자인 우리 차례가 되자 쿵쾅대는 동하의 심장소리가 내 귀까지 들리는 듯하다.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하나 둘 하나 둘’ 구령 소리에 우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동하는 자기보다 보폭이 좁은 나를 위해 속도를 조절하고 호흡을 맞춘다. 결국 우리는 꽤 벌어진 선두 팀을 추격해서 1위로 골인했다. 그 순간 동하의 환한 웃음을 잊을 수가 없다. 동하의 재발견이다.

수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건 참 뭉클하다. 동하의 시도와 변화를 지켜볼 수 있어 교사의 삶이 행복하다. 어른들은 때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의 행복을 보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매순간 행복하기 위한 선택을 한다.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는 순간은 아이들이 행복을 선택한 순간이다. 아이들이 활짝 웃는 순간이 많은 오늘, 지금 여기에 팔딱 팔딱 사는 기분으로 흠뻑 취하는 날이다.

축제가 좋다. 무지개색 아이들이 시원시원 달리는 모습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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