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날씨 속 개학에 아침부터 지칠 법도 한데, 아이들은 연신 손부채질을 해가며 오랜만에 만난 짝꿍과 이야기보따리를 푸느라 신이 났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일, 올림픽 경기 응원하느라 잠을 설친 이야기, 가족과 함께 간 바다, 강원도까지 가서 본 밤하늘의 유성쇼. 보따리 구경에 눈이 휘둥그레 놀라기도 하고 부러운 눈치를 보내기도 하며 한데 어우러져 깔깔거린다. 그리고 나에게도 들려준다.

“민서는 필리핀에 갔는데 거리가 너무 깨끗해서 부끄러웠대요. 우리는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봐도 그냥 가버리는데.”

“한결이는 울릉도랑 독도에 갔었대요.”

“와~~~~ 어땠어? 좋았어?”

민서를 향하던 아이들의 시선이 한결이에게 쏠리고 눈동자를 따라 아이들 몸도 따라 돌아간다. 1학기 말에 했던 독도 수업 덕분인지 아이들의 관심이 후끈 뜨겁다. 한결이는 독도에 도착해서 그저 땅만 밟았을 뿐인데 왠지 감동이더라며 그곳을 묵묵히 지켜주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방학 이야기로 시끌벅적한 아이들에게 사진 카드를 나누어 주고 ‘나의 1학기’와 닮은 카드, ‘내가 바라는 2학기’와 닮은 카드를 골라 보도록 했다.

1학기는 온갖 잡생각이 많아 혼란스러웠는데 2학기에는 길을 찾고 싶다고 한다. 1학기는 앞이 보이지 않고 깜깜했는데 2학기에는 힘들어도 결승선까지 가는 마라톤처럼 열심히 해보고 싶다고 한다. 1학기는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2학기에는 두려워 보이는 미래에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1학기는 친구들과 많이 웃으며 즐거웠고 2학기에는 마지막 중학교 시절의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새로운 2학기를 꿈꾸는 아이들의 소망이 곡식을 영글게 하는 가을볕 같다.

수업 시간만 되면 무기력해 보이던 소미가 ‘내가 바라는 2학기’ 사진으로 책이 잔뜩 쌓인 책상에 엎드려 잠든 학생의 사진을 골랐다. 2학기에는 공부하다 지쳐 잠들어 보는 것이 소원이란다. 내내 어둡던 소미의 표정이 오늘은 환하게 밝다.

“선생님, 선생님은요 우울증 치료사 같은 거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지나가듯 툭 말하고는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 소미. 내 보기에 우울증 치료사는 소미 자신인데 말이다. 그리고 소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알아준 친구들이다.

방학동안 소미가 자랐다. 아이들이 훌쩍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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