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학기로 정기고사를 보지 않지만 학기말까지 아이들은 수업에 열심이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너나 할 것 없이 수업하기 힘들어하던 작년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학년말 바빠진 업무에 내가 먼저 꾀가 날 정도다. “시험 끝났으니까 딱 한 번만 영화 봐요.”라고 조르는 단골 애교 멘트도 없다. 한 학기 동안 모둠활동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찾고, 배우고,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어쩌면 ‘불행한 날’이 굳이 없어도 아이들은 잘 배우고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먼저 와서 학교 입구에 자리를 잡은 아이들의 표정이 발그랗게 들떴다. 허둥지둥 뛰어오는 한 녀석은 채 말리지 못한 머리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질 지경이다. “아이고 춥겠다. 감기 걸리는 거 아냐?”라고 이맛살을 찌푸리는 나에게 씩 웃으며 “에이, 괜찮아요.”라며 넉살좋게 한마디하고 준비한 초코바 상자를 집어 든다. 요 며칠 포근해진 날씨가 고맙다.
응원 메시지를 직접 써서 붙인 초코바를 선배들에게 내미는 손이 왠지 쑥스러워 보인다. “시험 잘 보세요, 힘내세요.”라며 건네는 말도 어째 모기 소리에 끝내 말꼬리를 흐리지만 얼굴은 더없이 환하다. 수줍어하는 아이들 모습에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주인공 트레버가 오버랩 된다.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트레버의 계획처럼 내가 누군가를 돕고 도움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는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텐데 말이다. 누군가를 돕는 것이 나에게 행복으로 돌아오는 것을 아이들은 오늘 조금쯤 눈치 채지 않았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 목소리가 높아진다.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선배들과 하이파이브도 한다. 학교를 다니는 중 ‘가장 불행한 날’이라지만 초코바를 받아든 2학년들 얼굴에 반짝 미소가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