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분 일찍 나왔을 뿐인데 어스름한 하늘에 새벽 기운이 남아 있다. 5분이 금쪽같은 아침 시간이지만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나서는 길이니 거꾸로 시집살이가 따로 없다. 2학년들이 마지막 기말고사를 보는 오늘, 1학년 아이들이 이벤트를 준비했다. 올해 1학년은 정기 지필시험이 없는 자유학기를 하고 있다. 사회 교과 시간을 1시간 줄이고 고민 끝에 개설한 ‘행복공감사회’시간에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대화법을 배우고 익힌다. 공감 활동의 하나로 준비한 ‘우리학교 사회복지사 되기’ 프로젝트에서 아이들은 선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것이다. 시험을 보는 날이 가장 불행한 날이요, 가장 응원과
지지가 필요한 날이라는 아이들의 이구동성에 쓴 웃음이 난다.

자유학기로 정기고사를 보지 않지만 학기말까지 아이들은 수업에 열심이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너나 할 것 없이 수업하기 힘들어하던 작년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학년말 바빠진 업무에 내가 먼저 꾀가 날 정도다. “시험 끝났으니까 딱 한 번만 영화 봐요.”라고 조르는 단골 애교 멘트도 없다. 한 학기 동안 모둠활동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찾고, 배우고,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어쩌면 ‘불행한 날’이 굳이 없어도 아이들은 잘 배우고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먼저 와서 학교 입구에 자리를 잡은 아이들의 표정이 발그랗게 들떴다. 허둥지둥 뛰어오는 한 녀석은 채 말리지 못한 머리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질 지경이다. “아이고 춥겠다. 감기 걸리는 거 아냐?”라고 이맛살을 찌푸리는 나에게 씩 웃으며 “에이, 괜찮아요.”라며 넉살좋게 한마디하고 준비한 초코바 상자를 집어 든다. 요 며칠 포근해진 날씨가 고맙다.

응원 메시지를 직접 써서 붙인 초코바를 선배들에게 내미는 손이 왠지 쑥스러워 보인다. “시험 잘 보세요, 힘내세요.”라며 건네는 말도 어째 모기 소리에 끝내 말꼬리를 흐리지만 얼굴은 더없이 환하다. 수줍어하는 아이들 모습에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주인공 트레버가 오버랩 된다.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트레버의 계획처럼 내가 누군가를 돕고 도움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는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텐데 말이다. 누군가를 돕는 것이 나에게 행복으로 돌아오는 것을 아이들은 오늘 조금쯤 눈치 채지 않았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 목소리가 높아진다.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선배들과 하이파이브도 한다. 학교를 다니는 중 ‘가장 불행한 날’이라지만 초코바를 받아든 2학년들 얼굴에 반짝 미소가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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