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하고 사랑스런 지도로 음식 제맛 알아가는 아이들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 급하게 부엌으로 들어와 배고프다고 보채는 딸을 위해 엄마는 항상 고구마를 쪄놓고 밥 먹기 전 요기하라고 고구마 양재기를 건네 주셨습니다. 허겁지겁 두어 개 급히 먹다 목이 막히는 듯 보이면 동치미를 건네주시던 엄마의 손길..

제는 어린이집하는 딸을 위해 해마다 김장에 필요한 채소들을 자식 돌보듯 가꾸어 일주일 이상 다듬고 썰고 까서 김장을 해주십니다. 가끔씩 칠순이 넘은 엄마 친구들이 고무장갑을 들고 김장하러 오시면서 꼭 하시는 말... “딸래미 하나

있는 게 엄마 잡것네”... 죄송한 마음에 엄마에게 “이제 어린이집 김장은 절인배추 사서 제가 할게요.” 라고 말씀드리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건데 뭔 고생이겠니? 몸 아프면 해주지도 못하니까 일, 이년만 더 해 줄께” 하신지가 벌써 15년. 김치통을 바리바리 싣고 만석지기가 된 기분으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부모님의 사랑에 고마움, 감사함, 미안함, 엄마의 고단함이 교차됩니다.

렇게 가져온 김치는 아이들에게 제공됩니다. 맛깔스럽고 시원하게 익은 백김치는 아이들이 엄청 좋아합니다. 귀가 후 집에 가서도 하얀 김치를 달라는 아이들^^ 짜고 맵지 않은 할머니표 김장김치라서 요즘아이들 같지 않게 다른 반찬은 먹지 않고 유난히 김치만 좋아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학기초 “우리 아이가 편식이 너무 심해 꼭 지도를 부탁합니다” 라고 당부하시는 부모님들이 종종 계십니다. 각 반 담임들은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제공된 음식들을 소개하고 어떤 음식이 어떻게 좋은지 설명해 주면서 특정음식을 먹지 않으려는 아이에게는 잘 먹는 친구들 또는 교사가 먼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삼키지 않더라도 입안에 넣어보고 뱉더라도 음식의 맛이나 향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반복적인 맛보기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린이집 점심시간은 정말 난리도 아닙니다. 심하게 흘리면서 먹는 아이, 특정음식을 먹지 않는다거나 입안에 넣고 물고만 있는 아이, 좋아하는 반찬만 골라서 먹는 아이, 본인의 반찬은 아껴두고 친구의 반찬을 먼저 가져가 먹다가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 친구 식판을 뒤엎는 아이, 한 입 물고 놀면서 다 먹으면 다시 와서 입 벌리는 아이, 두 세 그릇을 먹고도 더 먹으려는 아이...이렇게 지도해 주다 보면 늘 식은 음식을 드실 수밖에 없는 교사들의 점심시간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맛있다면서 식판째 들고 국물을 쪽쪽 빨아먹다 식판 음식을 뒤집어 써도 밥 잘 먹는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점심시간 전에 유희실에서 놀이하다가 주방 문 쪽에서 코를 씰룩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예진이 성윤이도 잘 먹고 잘 놀아서 예쁩니다.

마 전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에게 나물반찬을 억지로 먹이다가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구속되기 직전 부모님과 동료교사, 여러 정황들을 참고해 벌금형으로 끝난 적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내 아이가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을 때 부모님들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는 책임감을 갖고 있으므로 제공된 음식을 잘 먹을 수 있도록 여러모로 지도하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음식을 더 챙겨 먹이는 것보다 아이의 개인기호와 자율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 담임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는 더 큰 방법인 것 같습니다.

즘 요리프로그램이 대세입니다.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요리활동 시간을 통해 오감발달, 정서발달, 친구들에 대한 배려, 재료를 다듬고 만들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본인이 만든 음식에 관심을 갖고 편식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주말에는 내 아이와 함께 간식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면 어떨까요? 아이에게 어떤 간식을 만들어 보고 싶은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함께 구입하러 다니며 다듬고 만들어 보면서 함께하는 시간은 그 어떤 수업보다도 값진 교육일 것이며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정진순(사랑으로 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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