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맥/빼어날 수/갈 지/탄식할 탄

보리이삭이 무성함을 탄식하는 뜻. 곧 고국이 멸망한 탄식

▲ 그림 서현정 예손공방 대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光復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자 한다. 한자 그대로를 해석해 본다면 ‘빛을 다시 찾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사전적 의미로는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광복이라는 단어. 나라 잃은 설움을 아는 사람들에게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단어가 바로 광복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광복절이 공휴일로만 여겨지고 있는 세상이니 씁쓸함만이 남는다.

麥秀之嘆이라는 고사는 중국 고대 3왕조의 하나인 은(殷)나라 주왕이 음란에 빠져 폭정을 일삼자 이를 지성으로 간한 신하 중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세 왕족이 있었다. 미자, 기자, 비간. 미자는 주왕의 형으로서 누차 간했으나 듣지 않자 국외로 망명했다. 기자도 망명 했다. 그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거짓미치광이가 되고 또 노예로까지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왕자 비간은 끝까지 간하다가 결국 가슴을 찢기는 극형을 당하고 만다. 이윽고 주왕은 삼공(三公:왕을 보좌하는 세 제후)의 한사람이었던 서백(훗날 주문황)의 아들 발(發)에게 주살 당하고 천하는 주왕조로 바뀌었다. 주나라의 시조가 된 무왕 발은 은 왕조의 봉제사(奉祭祀)를 위해 미자를 송 왕으로 봉했다. 그리고 기자도 무왕을 보좌하게 하였다. 이에 앞서 기자가 망명지에서 무왕의 부름을 받고 주나라의 도읍으로 가던 도중 은나라의 옛 도읍지를 지나게 되었다. 번화하던 옛 모습은 간 데 없고 궁궐터엔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했다.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금치 못한 기자는 시 한수를 읊었다.

 보리이삭은 무럭무럭 자라나고(麥秀漸漸兮)
벼와 기장도 윤기가 흐르는구나(禾黍油油兮)
교활한 저 철부지가(彼狡童兮)
내 말을 듣지 않았음이 슬프구나(不與我好兮)

 위 기자의 시와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보면 망국의 한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끄을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기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리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을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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