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의 절반이라던 6월을 넘겨 7월 초반에 접어드는 나날에, 나는 새삼스럽지만 이미 지나버린 6월 25일이라는 날짜를 다시 불러보고자 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에 앉아 보내는 고등학생들에게 '6월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십중팔구 '수행평가가 잔뜩 몰려있는 달' 이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고, 나 역시 그렇다. 그렇게 하루하루 수행평가를 치러 가며 어떻게든 6월을 보내고 나면 기말고사라는 달갑지 않은 이벤트도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6월의 후반의 우리들은 교과서에 반쯤 얼굴을 묻어가며 치열하게 보낼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6월 후반에 위치한 6월 25일이란 날짜를 우리들은 신경 쓰지 못한다. 아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기사가 나갈 즈음 대부분 시험이 끝나있을 우리 학생들에게 6월 25일을 다시금 일러 주기 위해 잠시 6.25에 대해 조금이라도 흥미를 가져 줄 만한 사실들을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올해가 6.25전쟁이 일어난 지 65주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학생들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에 북한이 남침을 하며 일어났는데, 북한이 그 많고 많은 360일 중 전쟁하기 알맞지 않은 장마철에 전쟁을 시작한 이유가 굉장히 인상 깊다. 바로 8월 15일 광복절에 통일을 선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38선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북한군이 미리 계산한 속도로 전진한다면 50일쯤 걸리는데, 8월 15일에서 50일을 역산하면 6월 25일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6월 25일 날 남침을 하는 대범함을 보인 것이다. 당시 남한의 고위 간부들은 술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다고.


서울대병원 학살사건

덕분에 쉽게 북한의 남침을 허락하고 전쟁이 발발된 지 3일이 지났던 6월 28일, 서울대병원 학살사건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건인데, 이 사건은 전쟁 발발 직후였던 당시 전선에서 중상을 입은 부상병들이 입원하고 있던 서울대병원에 서울까지 밀고 내려왔던 북한군들이 한국군을 사살하겠다는 명분으로 병원 안에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학살해버린 사건이다. 당연히 병원에는 부상병 뿐만 아니라 의료진, 일반 환자, 일반 환자의 보호자들도 있었기에 충격을 주는 사건이다. 북한군의 학살 과정과 학살 이후의 상황 때문에 더 비난을 받았고, 서울대 병원 뿐만 아니라 다른 병원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져 더 논란이 되었던 사건. 게다가 북한군이 밀려나기 직전 또 한번 학살을 벌였다고 하니 더 잊지 말아야 할 전쟁 범죄이다.

또 다른 학살 사건으로는 노근리 학살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만일 당장 전쟁이 발발한다면 이 기사를 쓰고 있는 나도 겪고 있을 사람들도 겪을 수 있는, 7월 26일 부터 29일 동안 민간인이 미군에 의해 학살된 사건이다. 그것도 같은 충청북도에 있는 영동군에서 일어난 희생자인 당시 주곡리 마을 주민들과 타 지역 주민들은 미군의 유도에 따라 피난을 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미군의 공격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미군이 쌍굴 밑으로 피신을 유도하였고, 주민들이 피신을 완료하자 그대로 굴에 총을 쏴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그 학살 사건이 일어난 쌍굴은 여전히 탄환이 잔뜩 박힌 채로 보존이 되어 있다고 하며, 이 사건과 관련된 영화와 소설이 있으니 참고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남한을 도운 참전국과 지원군

주제를 살짝 바꿔, 당시 남한을 도와준 참전국과 지원군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다. 2012년 새로 발표된 참전국 명단에 따르면 63개국이라고 하는데, 유명한 사실로는 터키가 미국과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군사를 파병한 일이 있다. 이 외에도 프랑스의 랄프 몽클라르 중장은 6.25에 참여하기 위해 일부러 계급까지 강등시켜가며 참전하였다고 전해지며(그러나 미군에겐 본래 계급의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뉴질랜드는 마오리족까지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는 당시 황제가 자신의 친위대를 파병하기도 했다고.(당시 에티오피아의 제대로 된 군대가 친위대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의료 파견 지원국에는 북유럽 국가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이 있었으며 당시 UN소속이 아니었던 이탈리아도 있었는데, 이탈리아가 자진해서 지원국이 된 이유는 1,2차 세계 전쟁으로 전범국가가 되어 UN에 가입하지 못한 이탈리아의 이미지를 되돌리기 위한 노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4개의 국가 말고도 인도 또한 의료 파견 지원국이었는데, 놀랍게도 인도는 공산 측에도 지원을 해주었다고 전해진다.

물자 지원국에는 대표적으로 일본이 있다. 일본이 있는 이유는 역사시간에 한번쯤 들어봤을 터인데, 전쟁 직후로 빈털털이였던 일본에 미군이 물자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군수공장역할을 일본에 맡겼기 때문에 이 기회를 통해서 일본은 다시 한 번 경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흥미로운 물가 지원국에는 바티칸 교황청, 모나코 등이 있으며, 헝가리는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해주었다고 하는데 당시 헝가리에는 공산주의 반대 운동이 일어나 반소(소련에 반대) 감정이 악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앞서 기사의 초반에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했다고 서술했는데, 이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부로 정전(휴전)되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가? 정전 60주년을 맞이했던 2013년, 북한이 정전협정의 종료를 선언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여러 가지 여건상 현재 북한의 상황이라던가 여건, 국제사회의 흐름을 여러모로 조합해보면 당장 일어나기엔 매우 힘든 일이겠지만, 언제 어디서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는 것이다.

비록 공부 때문에 너무 바쁘더라도, 6월 25일이 되면 잠시 6.25전쟁에 대해 생각해보자. 학교 역사 교과서 한 두 장 분량의 6.25 전쟁 이야기는 얕아도 너무 얕다. 내가 소개한 학살 사건 말고도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많은 지원국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사실들은 많다. 전쟁이 벌어진 지 65년이 흐른 지금은 너무나도 평화롭기 때문에 당장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건 어려울 터이다. 그렇다고 '만약 일요일 새벽 4시에 전쟁이 일어난다면....학교 안가도 된다. 신난다!' 라는 장난 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단 몇 분이라도 좋으니 전쟁에 대해 잊지 않도록 떠올려보도록 하자.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이 괜히 있진 않을 터이니.
 

▲ 정유진(산남고)청소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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