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된 그물이 걸려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어떤 구슬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에 그 울림이 연달아 퍼진다’.

박노해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화엄경 속 ‘인다라의 구슬’이다.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의 글에서 ‘인다라의 구슬’을 읽고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겠구나 싶었던 반가운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화장세계(華藏世界)’는 불교에서 그리는 세계로 연꽃 속에 담겨있는 세계를 의미하는데, 수많은 종류의 꽃으로 가득한 세상을 뜻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부터 눈길 안가고 보잘 것 없는 들꽃에 이르기까지 모든 꽃은 땅에 뿌리내려 연결되어 있다. 망망대해의 섬이 고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바다 속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반 교실. 아이들과 나, 스물아홉 명이 함께 하는 작은 세상이다. 내 보기엔 아이들이 인다라의 구슬이고 화장세계의 꽃이다.
 
스물아홉 중에 당황스러운 순간에 화가 나는 아이가 있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주변의 사람에게 욕을 하고 화를 낸다. 누군가 화를 내면 무섭고 두려워 아무 말도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 아무런 말을 못하는 친구가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에 화가 나서 그 친구 대신 억울함을 이야기 하는 아이가 있다. 서로 언성을 높이는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주변에서 말없이 지켜보는 아이가 있다.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을 하지 말라고 언성 높여 말하는 아이가 있다. 욕을 듣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 화내고 욕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화가 나서 함께 욕을 하는 아이도 있다.
 
어제 우리 반 교실의 갈등 상황에서 아이들의 모습이다. 아이들의 진정한 모습은 평화로울 때보다 갈등 상황에서 드러나기가 쉽다.
화를 내는 아이는 삶에서 얼마나 많은 상황에서 화가 나는 걸까? 매번 화가 가라앉으면 후회하고 미안해한다. 답답하고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상대가 화를 낼 때 잘못도 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는 따뜻하고 온순한 마음을 지녔다. 놀라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할 텐데 그런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안쓰럽다. 친구의 일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나서는 아이는 친구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기특하고 예쁘다. 맞서서 화를 내는 것은 염려된다. 결국 가장 상처받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싶어서다.
 
아이들이 갈등에 처할 때 나는 긴장되고 걱정되고 애가 쓰인다. 불안하고 버겁기도 하다. 한편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의 모습이 반갑다. 아이들과 깊이 만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갈등을 넘어서고 싶고 만남의 기회로서의 갈등을 환영하고 싶다. 각기 다른 마음을 지니고 다른 행동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 있는 그대로 아이들을 만나고 그 모습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하고 싶다. 내가 아이들을, 아이들이 서로 간에, 아이들이 교사인 나를 이해하고 수용할 때 우리는 각자 자유로우면서도 서로를 품어주는 관계가 되지 않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들을 돕는 길일까? 어떤 선택이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길일까? 그 속에 아이들과 내가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끝없이 고민이 된다. 아이들보다 뛰어난 존재로서의 교사가 아닌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교사이고 싶다.
 
▲ 추주연(수곡중교사)
반에서 갈등을 지켜본 아이들에게 지금 여기의 기분을 말하게 했다. 그저 그런 덤덤한 마음, 속상한 마음, 짜증나는 마음, 화나는 마음, 조급한 마음, 기대되는 마음들이 드러난다. 속상해 하는 친구를 위로하기도 하고 힘들고 지친 마음에 울먹이는 나에게 힘을 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감정이 드러나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들이 소중하다.
‘인다라의 구슬’처럼 어느 한 사람의 울림이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고 모든 사람의 울림이 한사람에게 전해지는 세상. 서로에게 울림을 주는 교실이 내가 아이들과 함께 가꾸어 나가고 싶은 공감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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