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장이 하얀 천막 아래 형형색색이다. 꽃무늬에 노란 오리 그림, 별자리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학급별로 맞춰 입고 아이들은 연신 싱글벙글한다. 체육대회가 있는 오늘은 스승의 날이기도 하다. 작년에 졸업한 아이들이 삼삼오오 찾아온다. 조잘조잘 전해주는 고등학교 적응기가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다. 간만에 일찍 끝나 부족한 잠도 자고 쉬고 싶을 텐데 잊지 않고 찾아와 편지를 손에 쥐어준다. 책상 위에 슬그머니 비타민 음료 하나를 놓고 가기도 하고, 운동장 저편에서 달려와 덥석 품에 안기는 녀석도 있다.

한바탕 신나는 체육대회가 끝나고 아이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간 학교는 잔칫집 다음날 같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운동장 흙먼지를 들이마시며 응원한 탓인지 칼칼해진 목으로 퇴근 준비를 하는데 어슬렁 그림자 하나가 교무실 창문에 드리운다. 3년 전 내 속을 까맣게 태우던 혁이다.
“선생님, 이거요.”
불쑥 내민 혁이 손에는 학교 안 어디서 주웠을 법한 주스병에 카네이션이 꽂혀있다. 어? 놀라서 쳐다만 보는데 혁이가 주스병을 등 뒤로 숨긴다.
“이거 싫으시면 꽃 다시 사올까요?” “아니 이게 누구야? 왜 싫어? 누가 준건데?”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너스레를 떨며 혁이 손에서 꽃이 든 주스병을 받아든다.
 
공부에 도통 관심이 없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혁이다. 화가 난다고, 짜증난다고 학교 유리창을 여러 장 깨놓던 녀석이다. 네가 깬 학교 유리창만큼 너도 아프고 힘들었겠지? 많이 답답했겠다. 유리창 깨놓고 학교 밖을 뛰쳐나가다가 내가 부르면 못이긴 척 다시 돌아와 주었지. 다음날이면 교무실에 와서 내 주변을 맴돌던 녀석이었는데. 그 때 손 한 번 더 잡아줄 걸. 한 번 더 따뜻하게 안아줄 걸. 내 마음을 몰라주는 혁이를 원망하기도 하고, 삐뚤어지는 혁이를 보며 속상한 마음에 울기도 많이 했다. 혁이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 상담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때 나는 혁이를 정말 이해했던 걸까? 잘 모르겠다. 아쉽고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선생님, 그 땐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애들이 힘들게 하면 말씀하세요. 제가 혼내줄게요.”
혁이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하더니 도망치듯 간다.
고맙다. 오래 묵은 마음 한 켠의 상처를 위로받는다. 따뜻한 스승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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