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읍/벨 참/말 마/일어날 속

큰 목적을 위해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가차 없이 버림을 비유한다

 
며칠 전 어느 정치인이 읍참마속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바람에 이슈가 되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고사성어를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유식해 보이지만 상황에 맞지 않는 고사를 언급하면 망신만 당한다는 것을 잘 들어내는 상황이었다. 과연 그 정치인은 읍참마속이라는 고사를 적절한 상황에 사용했는가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판단하기 바란다.
 
삼국시대 초엽인 촉나라 건흥 5년(서기227년) 3월, 제갈량은 대군을 이끌고 성도를 출발했다. 곧 한중을 석권하고 기산으로 진출하여 위나라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그러자 조조가 급파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에 부채꼴의 진을 치고 제갈량의 침공군과 대치했다. 이 ‘진’을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인 만큼 군량 수송로의 가정(한중의 동쪽)을 수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가정을 잃으면 중원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런데 그 중책을 맡길만한 장수가 없어 제갈량은 고민을 하는데 마속이 그 중책을 지원한다. 그는 제갈량이 아끼는 재기 발랄한 장수였다. 마속은 너무 어리기에 늙은 여우와 같이 지략이 많은 사마의를 대적하기에 부족하다 생각했지만 마속의 간청에 승낙을 한다.
“다년간의 병략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 하나 지켜내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권속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치 않겠습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부터 살펴보았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이 있었다. 제갈량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도로를 사수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적을 유인해서 역공할 생각으로 산 위에 진을 쳤다. 그러나 위나라의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한 채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식수가 끊긴 마속은 전 병력으로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나 용장인 장합에게 참패하고 만다.
 
전군을 한중으로 후퇴시킨 제갈량은 마속에게 중책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하고 군율을 어긴 그를 참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마속이 처형되는 날이 왔다. 마침 성도에서 연락관으로 와 있던 장완은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고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요.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끌리어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되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차 없이 처단하여 대의(大義)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는 법이오.”라고 말하며 참형을 집행하였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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