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는 일요일 오전,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고, 우리 가족은 짐을 꾸려 텃밭에 갔다. 짐은 밭에서 점심을 해 먹을 준비물이다. 밭에서, 비가 맨흙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은 운치가 있다. 비도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흙바닥을 만나야만 자연스럽다. 비는 흙 속으로 스며들어 땅을 촉촉하게 적시고 땅에 사는 생명들에게 마실 것을 제공한다. 이렇게 자연의 다른 생명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봐야만, 우리 정서도 안정이 된다. 도시의 삶은 이런 정서적 안정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 가시오가피

가 오락가락했다. 비가 그치거나 내리는 양이 적은 틈을 타, 아내와 난 밭에 있는 온갖 나물들을 뜯었다. 먼저 두릅이다. 두릅나무에는 가시가 촘촘했다. 가시를 막을 장갑을 끼고 줄기나 가지 끝에 나온 두릅 순을 똑똑 땄다. 두릅나무 바로 옆에서는 양봉을 하는데, 벌이 두릅나무를 지나다가 가시에 박혀 죽은 것이 여럿 보였다. 두릅나무 아래에 있는 머위도 뜯었다.

 

▲ 더덕
다음에는 가시오가피 순을 땄다. 긴 겨울을 견뎌내고 껍질을 뚫고 터져 나오는 생명(순)을 따는 것이 나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가시오가피는 두릅보다 양이 훨씬 더 많아 순을 따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느긋한 마음으로, 마치 도를 닦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의식을 하면서 천천히 따갔다. 밭둑에 있는 것을 다 따니, 커다란 소쿠리로 거의 가득 나왔다. 이렇게 따낸 순은 다시 나무와 붙어있던 쪽의 끝 부분을 다듬어야 한다. 먹을 것이 내 입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아주 많은 손이 간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것을 모른다. 비가 내릴 때는 창이 넓은 밀짚모자를 썼다.

▲ 두릅과 머위
밭둑에 있는 민들레와 고들빼기도 캤다. 막 싹이 나오기 시작한 취나물도 좀 뜯었다. 밭 한쪽에 심은 부추도 뜯고, 김치를 담을 쪽파도 캤다. 쪽파도 다듬는데 손이 많이 간다. 한참을 하다가 허리를 펴고, 한두 번은 일어나 몸을 풀어야 할 정도로 시간이 걸렸다.

물과 채소를 다 다듬고, 난 딸기밭을 정리했다. 노지딸기는 이제 꽃이 피었다. 지난 달 불을 잘못 놓아 타버린 곳에 다른 곳에 있는 딸기를 캐내어 옮겨 심었다. 비를 맞아 촉촉해진 흙의 감촉이 좋았다. 내가 딸기밭은 정리하는 사이, 아내는 두릅을 끓는 물에 데쳐 초고추장과 함께 내놓았다. 막걸리 한 잔 마시고, 갓 딴 두릅을 먹으니, 몸에 신선한 기운이 생기는 것 같았다. 아내는 쪽파와 부추로 부침개까지 만들었다.

▲ 딸기꽃

걸리와 부침개로 점심을 먹고, 솥에 물을 붓고 불을 지폈다. 나물을 삶기 위해서다. 민들레, 취나물, 오가피, 머위, 고들빼기 순으로 삶았다. 갈수록 끓는 물의 색깔이 짙어갔다. 집에 와, 밭에서 삶은 다섯 가지 나물을 조금씩 떼 내어 한꺼번에 섞어 참기름, 고추장을 넣고 무쳤다. 이렇게 나물을 무칠 때는 일회용 비닐장갑이 아닌 맨손으로 해야 제 맛이 난다. 사람들 대부분은 손에 뭔가를 묻히는 것을 싫어한다.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요리를 하고(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도 대부분 그렇다), 흙도 장갑을 끼어야만 만진다. 이렇게 차단막을 치면 나 밖의 세상과 어떻게 제대로 교류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은연중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단막을 만들게 한다.

▲ 복숭아꽃과 배꽃

녁은 된장을 끓이고, 커다란 양푼에 내가 무친 나물과 밥을 넣고 비벼 먹었다. 싱싱한 데다가 스스로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니 얼마나 맛이 있겠는가. 그런데 아이들은 표정이 별로다. 나물 대부분에서 쓴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도 녀석들이 우리와 같이 나물을 뜯고 다듬는 공을 기울였다면 맛나게 먹었을 것이다. 녀석들은 요즘은 전처럼 밭에 가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가더라도 자꾸 집에 가려고 한다. 밭이 싫어서라기보다는 밭에 가면 심심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언젠가는 농사짓는 맛, 나물 노다지가 쏟아지는 밭의 무궁무진한 변화를 즐기게 될 것이다.

▲ 두릅과 머위
▲ 여섯가지 나물
▲ 복숭아꽃, 배꽃 등을 넣은 파전
막걸리와 두릅








오원근 변호사(법무법인 청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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