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6년 전 검사생활을 하면서 서울생태귀농학교에 다녔다. 전국귀농운동본부라는 단체에서 운영하였는데, 두 달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야간수업을 하고, 주말에는 농사현장으로 실습을 갔다. 우리 기수에는 모두 70여명이 들어왔다. 남녀노소 다양했다. 첫날 강의를 마치고, 학생들을 몇 개의 작목반으로 나누었다. 1년 안에 귀농할 사람들(구두미마을, 본디반), 3년 안에 귀농할 사람들(딴살림), 5년 안에 귀농할 사람들(귀사모), 10년 안에 귀농할 사람들(언가반), 전원생활을 할 사람들(전원반)로 나뉘어 만들어졌다.

난 고민 끝에 어정쩡하게 10년을 택했다. 우리 작목반 이름인 ‘언가반’은 ‘언젠가 가겠지’ 또는 ‘언능 가자’라는 뜻이다. 첫날 학교 부근 골목 허름한 막걸리 집에서 뒤풀이를 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정용수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가 전원반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였다. 귀농은 생태농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보통 도시인들이 꿈꾸는 전원생활은 도시적 삶을 그대로 시골에 옮겨놓고 그저 자그마한 텃밭이나 가꾸는 것이어서 생태농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귀농학교를 마치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하였다.

나의 오래된 꿈은 ‘소박한 집 짓고 미개한 방식으로 농사짓는 것’이다. 소박한 집은 흙집을 말하고, 미개한 방식은 가능한 한 석유를 원료로 하는 자재나 기계를 쓰지 않는 것이다. 최대한 생태적 농사에 가까워지고자 함이다. 텃밭에 뒷간을 지어 똥오줌을 퇴비화하고, 비닐하우스를 대나무로 만들고, 손쟁기로 밭을 갈고, 비닐을 씌우지 않고, 음식물 찌꺼기를 밭 두엄탕에서 똥오줌과 함께 퇴비화하는 것들이 지금 단계에서 내 노력이다. 귀농학교에서 ‘어정쩡하게’ 다짐한 10년에, 어느새 4년밖에 남지 않았다. 4년 후에는 정말로, 지금과 같은 텃밭농사가 아니라, 완전귀농의 다짐을 실천할 수 있을까? 그 순간은 갑자기가 아니라 끊임없는 성찰과 준비 끝에 자연스럽게 오리라.

 
난 한 달 전쯤 스마트폰을 끊고 다시 3G 핸드폰으로 돌아갔다. 2012년 가을경 스마트폰을 살 때부터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마트폰을 산 유일한 이유는, 당시 대선을 앞두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여 정권교체를 이루고자 함이었다. 나름대로 꽤 노력하였지만 실패하였다. 이후 이왕 구입한 스마트폰이니 계속 사용하자라는 마음이었는데, 어느 때부터는 도저히 견디기 어렵게 되었다. 언젠가는 술 마시고 잃어버린 다음날 아침, 잃어버린 것이 참 다행스럽게 생각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 스마트폰은 길을 찾아 다시 내게 돌아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와 둘이서 무작정 가게에 들어갔다. 매장 직원에게 스마트폰 2개를 내밀고 옛날 핸드폰으로 바꿔 달라고 하니, 직원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반대의 일은 있어도, 우리 같은 경우는 무척 드물다고 했다. 3G로 바꾼 후, 얼마간은 불안했다. 2년간 함께 했던 스마트폰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니, 당연히 금단현상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불편은 카톡과 밴드를 하지 못하는 것이었으나, 원래부터 그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해소되었다. 지금은 금단현상이 거의 없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구식 핸드폰이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으니 바꾸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전업농이 아니다보니, 지금과 같은 겨울철엔 농사일이 별로 없다. 음식물찌꺼기를 버리거나 밭에 묻어놓은 동치미를 꺼내러 가는 것 말고는 밭에 갈 이유도 없다. 얼마 전 날 좋은 때에는 밭에서 한참동안 새끼를 꼬았다. 다는 아니라도, 오이 지지대를 엮는 끈만큼은 ‘생태적인’ 새끼로 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한번은 아파트 쓰레기 버리는 곳에서 누군가 내놓은 나무의자 3개를 주워 밭으로 가져갔다. 나사가 빠지거나 한 곳을 손보면, 밭에서 훌륭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렇게라도 밭에 가면 굳었던 마음이 풀어진다. 장인어른이나 부근 다른 밭의 사람들도 마땅히 할 일은 없어도, 가끔씩 밭에 가서 서성거린다. 마음은 훨씬 더 서성댈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성거리는 마음으로 잔뜩 봄을 기다리고 있다.

오원근 변호사(법무법인 청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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