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 자녀교육 달인되기 20 >

김해숙(해성인문학네트워크)
 역사에서 요·순임금은 참 유명하다. 둘 다 태평성대의 화신이다. 동아시아의 왕치고 요·순임금을 롤모델로 삼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대기만성18,19 지면에서도 다룬 바가 있음). 그런데 이 두 임금은 전설과 역사 사이의 인물이기도 하다. 작은 부족 사회의 부족장 정도라고나 할까. 어쨌든 오늘의 역사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 요·순 임금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우임금이다. 우는 요·순의 뒤를 이은 왕이자 동아시아에서 ‘위대한 왕’이라 칭송을 받는 인물이다. 이 우임금의 ‘위대함’의 요인이 바로 오늘의 역사 공부의 목적이다.

  때는 요임금이 재위하던 시절이다. 요는 아주 큰 딜레마로 골치를 썩고 있었다. 요(堯) 란 이름 자체에 흙 토(土)자 세 개가 들어 있듯이 홍수가 아주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하들은 곤을 추천했다. 곤은 반신반인으로서 하늘과 땅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었다. 곤은 자주 범람하는 황하의 물길을 어떻게 잡을까 궁리하다가, 둑을 잘 쌓아 물길을 막기로 맘먹었다. 그러자 번뜩 묘책이 생각났다. 하늘나라에만 있는 흙 식양을 갖고 오면 딱 좋겠다는. 식양은 조금만 있어도 점점 불어나서 맘대로 부풀어 오르는 신비한 흙이었다. 곤은 결국 식양을 가져다 황하에다 높고 길고 근사한 둑을 쌓았다. 하지만 이럴 때 하늘나라의 신들이 가만있을 리 절대 만무. 신들의 노여움은 크나큰 홍수로 내려 둑은 터져버렸고, 곤은 도망치다가 죽음을 당한다. 헌데 이상하게도 곤의 몸이 삼년이 지나도 썩지 않았다. 천신이 곤의 배를 자르자 그 안에서 규룡이 튀어 나왔다. 그 규룡은 사람이 되었다.

 요임금 다음의 순 임금 때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졌지만 계속 큰 물이 져서 피해가 많았다. 신하들은 곤의 아들 우를 추천했다. 하지만 우는 곤의 자식이라 해서 거절했다. 하지만 순임금의 부하가 설득했다. 곤이 비록 실패를 했지만 토목에 있어 곤만한 사람도 없었고 그의 자질을 물려받은 아들 우 역시 토목공사의 달인이라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하의 토목공사를 맡게 된 우는 강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아버지의 실패도 곱씹으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결국 그는 물의 이치를 터득했다. 그리고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생리에 맞게 물길을 터는 방법으로 황하의 홍수를 다스렸다.

 이쯤에서 던질 만한 질문 하나. ‘곤과 우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곤은 둑을 쌓을 준비를 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하늘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하늘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왜일까? 곤이 하려는 일은 물의 이치를 따르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순리에 어긋나는 일에는 하늘은 절대 편들어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순리라는 말은 ‘도리를 따르다, 거스르지 않는다’란 뜻이다.

 그 다음 우의 성공요인 또 하나. 우는 아주 오랫동안 강을 관찰했다. 그리고는 발견했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이치를. 사실 이런 우의 태도는 우리들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순리대로 일을 해결하는 것도 큰 덕목이지만, 그러려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게 있다. 태도의 문제다. 우는 성실함의 대가이기도 했지만, 원인을 잘 보는 ‘관찰의 대가’였다. 사실 가만히 보면 측량(測量)이라는 글자 자체가 관찰을 전제로 하는 말 아니던가?
 결국 우 임금은 관찰-성찰-통찰, 이 삼 단계의 이치를 꿰고 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김해숙(해성인문학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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