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 자녀교육 달인되기 19 >

 김해숙(청주역사문화학교 연구원)
  “제발 부탁드립니다. 삶을 발코니에서 관망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도전들이 있는 그곳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삶을 살아가고자, 좀 더 발전시키고자 애쓰는 이들이 여러분께 도움을 청하는 ‘그곳’ 말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 빈곤을 타파하려는 몸부림, 참된 가치들을 위한 고군분투, 매일 직면하게 되는 이러한 삶의 투쟁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 /카톨릭출판사135~136쪽)”

 요즘 인기검색어 1위,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에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말씀이다. 도대체 우리가 얼마나 냉랭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얼마나 허접한 삶을 살고 있기에 이 분은 이렇게 절규하듯 외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의 모델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였다. 결국 프란치스코란 이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상처받은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청빈·겸손·소박함을 실천하는 이들의 대명사가 된 셈이다.

 여기, 또 한 명 일찍이 낮은 데서 세상을 바꾸었던 성군으로 불리는 이가 있으니 바로 순임금이다. 순의 아버지 고수는 장님이고 순은 눈동자가 네 개였다고 한다. 이는 고수는 세상을 볼 줄 모른다는 뜻이요 순은 세상이치에 밝았다는 비유이기도 하다. 암튼 순은 일찌감치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성장했다. 계모와 이복동생은 순에게 횡포를 부리고 아버지 역시 한통속이었다. 순은 본성이 착하고 너그러워 정성껏 아버지와 계모를 섬겼지만 결국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가는 곳마다 ‘빈곤을 타파하려는 몸부림, 참된 가치들을 위한 고군분투’로 자기 삶의 현장을 성심껏 돌보며 살았다. 그러자 자연히 순 옆에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요컨대 순을 따르는 부족 마을이 생겼다는 얘기다. 이 소문을 들은 요임금은 자신의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 순의 생활과 인간됨됨이를 지켜보았다. 결국 순은 모질고 악했던 가족들을 선한 길로 들어서게 했고, 지금까지도 순임금은 유토피아를 다스리던 성군으로 불린다.

 그렇다면 성군 요·순임금과 성인 프란치스코를  지금까지 우리가 자주 호명하는 이유가 자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참된 지도자의 덕목을 본다는 점이다. 헌데 여기서 청빈하고 겸손한 태도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참된 덕목은 실천에 있었다. 자신들이 생각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심한 고초도 외로움도 다 이겨낸 실천성. 그렇다면 이 실천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나는 이 답을 연암 박지원의 말에서 찾아냈다.

“학문하는 묘리는 다른 것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라도 물어야 한다......옛날 순임금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그릇을 굽고 물고기를 잡는 것에서 임금 노릇을 하는 데 이르기까지 어느 것도 남에게서 배워오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자는 말하기를 자기가 어려서 미천했기 때문에 상일에 아주 익숙했다고 했으니, 그 역시 밭 갈고 씨를 뿌리며 그릇 굽고 물고기 잡는 따위의 일일 것이다. 비록 순임금이나 공자와 같이 거룩하고 재주 많은 분도 물건을 보고서 기교를 생각해내며 일에 당해서 기구를 만들자면 시일도 부족하고 지혜도 모자랐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임금과 공자가 성인이 된 것도 남에게 묻기를 좋아해서 배우기를 잘한 데 지나지 않는다.-박지원 '연암집' 북학의서에서

요점은 앎과 삶을 끝없이 실천하는 것. 지금 우리 주변에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초를 겪고 있는 이웃들이 있다. 이 이웃들의 아픔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모르쇠하는 지도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저 팔짱 끼고 보고만 있는 수많은 ‘나’가 있다. 우린 모두 다시 배우고, 계속 배워야한다. 순임금과 공자처럼. 


 김해숙(청주역사문화학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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