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에 어긋나는 선거와 민주주의의 관계

국회의원 선거가 1달여 남았다. 건물마다 후보자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리고, 후보자들마다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거리와 식당 등에서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네준다.

흔히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민주주의가 시민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고, 현대는 (시민의 직접 통치가 불가하여 시민들이 대표 또는 대리를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통치를 담당케 하는)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그 시민들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가 현대 민주주의의 정수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선거를 통하여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 자체는 민주적인가? 선거제도, 대의제도가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적 제도라는 것과 그것 자체가 민주적인 제도인가라는 문제는 별개다.

흔히들 현대 민주정과 구분되는 고대 그리스 민주정의 제일의 특징은 대부분의 주요의사를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민회에서 결정하는 직접민주정적 요소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보다 더 큰 차이는 장군직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관직을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추첨을 통하여 배분하였다는 것이다.

선거제도가 민주주의의 표징이라는 지금의 우리의 통념과는 정반대로, 그들은 선거제도를 반민주적, 귀족적인 제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의 대표적인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BC322)도 “추첨을 통해 집정관을 임명하는 것은 민주적이고, 선거에 의한 것은 과두적”이라고 하였다.

당시의 공화주의적 자유의 의미중 하나는 ‘시민들이 번갈아 지배하는 것’을 의미하였고, 선거는 사회의 유력자, 탁월자의 半영구적 지배를 낳을 수밖에 없으므로, 시민들이 번갈아 지배를 하는 가장 좋은 제도가 추첨이라는 것이 그들의 통념이었던 것이다.

추첨을 통한 공직배분? 우리의 지금의 정치적 상상력으로는 도무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말 그대로 시민에 의한 자기 지배라고 한다면, 추첨을 통한 산술적 공직배분 정의는 그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제도인 것이다.

오히려 선거제도에 대한 그들의 비판에서 시대를 넘는 통찰력을 발견하게 된다. 2000여년이 지난 지금 현실을 돌아보더라도, 선거제도 자체가 귀족적임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지금 출마한 후보들 면면을 보면 학력이나 경력면을 제외하고라도 재산면에서 평범한 시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거의 모두가 자신의 부친 등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현재의 생계를 팽개치고 어렵게 모든 돈을 수억원씩 쏟아 부으며 정치를 한다는 것은 평범한 시민에게는 불가능하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Rousseau, 1712~1778)는 영국의 대의제를 풍자하며 영국시민들은 선거하는 날만 자유롭다고 하였지만, 사실상 선거에의 입후보조차 재산에 의하여 지배되어 그들중에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선거하는 날도 우리는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선거를 통하여 우리는 탁월한 자를 선출할 수 있을까, 사실상 그들의 탁월성은 가진 재산의 탁월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그 선출된 탁월한 자는 자신들이나 탁월한 자들의 이익이 아닌 일반시민이나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일한다고 할 수 있을까, 잘 나고 많이 가진 국회의원 300명이 모여 결정한 정책이 일반 서민들 300명이 모여 결정한 정책보다 서민들에게 보다 유리할 수 있다는 상상은 오히려 억지가 아닌가

2000여년전의 현명한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둔한 현대의 우리들에게 오히려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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