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취업 때문에 동아리 활동도 안한다고 하지만, 이삼십년 전 우리네 대학시절 동아리에는 많은 선후배가 있었습니다.

친한 후배 중에는 K군과 J양이 있었습니다. 선배들을 잘 따랐던 K군은 잘 생긴 외모에 장난기 어린 웃음을 가진 호감가는 후배였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 사진첩을 넘기다 보면 나와 함께 찍은 K군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후배 J양은 K군의 동기였습니다. J양은 밉지 않는 얼굴과 깔끔한 성격을 가진 그런 후배였습니다. K군과 J양은 같은 동기로 친한 사이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J양은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그중에서도 양희은이 번안곡으로 불러 널리 알려진 ‘일곱송인 수선화(Seven daffodils)‘를 잘 불렀습니다. 그때 나도 J양을 통해 그 노래를 처음 들었습니다. ’눈부신 아침햇살에 산과들 눈 뜰 때 , 그 맑은 시냇물 따라 내 마음도 흐르네~‘

처음 듣자마자 마음을 콕 파고드는 노래였습니다.

그렇게 수선화란 꽃을 후배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그 후 나는 졸업을 하고 서울을 떠나 후배들과는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 졌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다른 후배를 통해 K군과 J양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K군과 J양은 결혼을 했고, 결혼 한지 얼마 안 되서, K군이 일하던 직장에서 사고로 J양의 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그런 추억 때문에 나에게 수선화는 그리스·로마에 나오는 신화처럼 애닯게 다가오는 꽃이 되었습니다.

양치기 소년 나르시소스는 잘생긴 외모 때문에 요정들의 흠모에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르시소스는 그들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고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이에 화가 난 한 요정이 오만한 나르시소스가 참사랑에 눈을 뜨게 한 다음 곧 그 사랑이 깨져 버리게 해 달라고 복수의 여신에게 빌었습니다. 복수의 여신은 그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나르시소스가 호수에서 물을 마시려 할 때,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자기 모습에서 사랑을 느끼게 한 것입니다. 나르시소스는 호수에 비친 얼굴이 호수의 요정인줄만 알았습니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호수속의 얼굴만을 애타게 그리던 나르시소스는 호수속의 요정을 쫒아 물속으로 들어갔고, 결국은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나르시소스가 호수를 내려다보며 앉아 있던 그 자리에서 달콤한 향기를 가진 예쁜 꽃이 피어났습니다. 그 꽃이 수선화(narcissus)입니다. 그래서 나르시소스에서 나온 나르시즘이란 말은 자아도취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꽃말도 자기애(自己愛),신비,자존심입니다.

 
수선화꽃이 고개를 숙이고 발 밑을 쳐다보는 모양에서 나온 이야기 같습니다. 수선화는 추위에 강해서 이른 봄에 꽃을 피웁니다. 양지바르고 배수가 잘되는 습한 땅에서 잘 자랍니다. 다른 구근 식물처럼, 정원에 심으면 3~4년에 한번씩 수확해서 다시 심어야만 퇴화되지 않고 볼 수 있습니다. 지중해 연안에 많이 자생하며, 중국,일본은 물론 우리나라 제주도에서도 쉽게 볼수 있습니다. 봄에 피는 꽃 중에서 히야신스, 천리향과 함께 가장 좋은 향기를 가진 꽃인 것 같습니다. 올해도 수선화의 향기가 코 끝을 스칠 때면, 보고 싶은 K군과 J양의 얼굴이 그려질 것 같습니다. 지난 젊은 학창시절의 아른한 추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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