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 저녁, 청주시 개신초등학교 부근에서 고등학교 동문과 술자리를 가졌다.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갖고 간 차는 처음 식당 부근에 놓고, 집에는 택시를 타고 왔다. 다음날 아침 차를 찾으러 가는 길에 개신초등학교 옆을 지나게 되었다.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그득했다. 아이들은 '새파랗고 시원하게' 깔린 인조잔디 위에서 축구를 하거나, 인조트랙을 돌고 있었다. 운동장은 온통 인조물이 뒤덮여 있어 쉽게 흙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 노는 모습을 휘둘러보다가 마침내 흙을 찾아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래였다. 사각의 틀 안에 갇혀 있었는데, 멀리뛰기를 할 때 착지하는 곳이었다. 그곳 사각의 틀에 한 여자 아이가 쭈그리고 앉아, 한 손으로 모래를 떠 들어 올렸다가 다시 천천히 아래로 쏟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난 울타리에 몸을 기대고 그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언뜻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혼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바로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트랙을 도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두 바퀴 돌라고 했어."라는 등의 말을 자주 걸었다. 그렇게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면서도 모래를 떠 올렸다가 쏟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난 '저 아이는 지금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지만, 모래를 만지는 것이 더 재미있어 차마 그것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살펴봄은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트랙을 돌던 아이 하나가 모래를 만지는 아이 쪽으로 말을 걸면서 다가오더니, 사각의 틀 안으로 내려가 모래를 사뿐히 밟으며 걸었다. 그 아이는 모래가 자신의 발에 밟혀 아래로 조금씩 꺼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인조잔디 따위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변화'를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흙이 아이들의 교육, 특히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때 난 아이들에게 인기척을 보내면서, "모래랑 노는 게 재미있니·"라고 물었다. 아이들은 그렇다고 했다. 인조잔디 운동장에서도 흙을 가까이 하려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 반갑고 고마웠다.
전에 대전지검 공주지청에서 검사로 일할 때, 관내에 있는 치료감호소에 들른 적이 있었다. 치료감호소 측으로부터 업무현황 등을 설명받은 뒤, 시설을 둘러보다가, 온통 콘크리트로 덮여 있는 운동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치료감호소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정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다. 정서적으로 아주 세밀하게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콘크리트 운동장이라니. 그곳에서 운동을 하면서 정서적으로 과연 도움을 받는 것이 있기는 할까· 동행하던 치료감호소 관계자에게 그런 취지로 물으니 납득할 만한 답을 하지 못했다.
조작된 간첩단 사건으로 13년간 감옥살이를 한 황대권님이 쓴 '야생초편지'를 보면, 운동장 한켠에서 자라는 풀 한 포기가 수용자의 정서에 얼마나 민감하게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 수 있다. 나도 전에 서울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하면서 마음이 울적하고 깊게 가라앉았을 때, 콘크리트 갈라진 틈에서 난 풀 한 포기를 계속 바라보다가, 불안이 눈 녹듯 사라지면서 삶에 대한 의욕이 샘물처럼 솟아났던 경험이 있다.
지난 토요일, 감자를 심었다. 밑거름을 뿌리고, 삽으로 땅을 뒤집은 다음 두둑을 만들어, 그 안에 조각낸 씨감자를 심었다. 심으면서, '이것들이 다 살아날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작년에도 똑같은 의심이 들었는데, 실제로는 90%가 훨씬 넘게 싹을 틔웠다. 흙이 생명을 키워내는 힘은 정말로 경이롭다. 아이들이 가까이 할 것은 이 자연스러운 생명의 흙이지, 무늬만 그럴 듯하고 생명이 없는 가짜풀(인조잔디)이 아니다.

오원근 변호사(법무법인 청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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