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우의 교육이야기-5

김병우 교육위원
교육(敎育)의 사전적 의미는 글자 그대로 ‘가르쳐 기르는 일’이다. 이 중 ‘가르칠 敎’자는 전번에 풀어 보았으니 이번에는 ‘기를 育’자를 파자하여 ‘기르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育자의 윗부분은 ‘아이 자(子)’자가 거꾸로 선 형상이다. 거꾸로 선 아이? 바로 태아다. 태어나기 전의 미숙아다. 아래 부분의 月은 ‘고기 육(肉)’자의 변형인데, 여기선 발음을 나타내는 부분이지만 '시간(달)'의 의미가 들어있다고 보기도 한다. 미숙한 아이를 '시간이 기른다'는 의미로 읽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자가 만들어지던 때의 사람들은 ‘기른다’는 개념의 상징을 어머니가 ‘태중에 아이를 품어 산달을 채우는 과정’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 때는 아이는 그냥 잉태만 해서 기다리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 태어나는 것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생명을 지닌 존재를 기른다는 것은 그처럼 ‘품고 기다림’이 기본이라는 뜻일까.

필자가 교육운동을 시작하던 20여 년 전, 동화작가이기도 한 이현주 목사님의 ‘참교육 강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평소 수염을 깎지 않아 늘 덥수룩한 턱수염을 달고 다니는 당신께 신자들이 종종 ‘목사님은 왜 수염을 기르시나요’하고 묻더란다. 자신은 수염을 기른다기보다 그냥 내버려둘 뿐인데, 주위에서 그렇게 보더라는 것. 그런데, 그러고 보니 그제야 목사님도 알겠더란다. ‘기르는 것이란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로구나…’ 하고.

그 강연에서 목사님이 ‘기르기’의 개념을 어떻게 규정 짓고 마무리했었던가는 어사무사하다. 하지만 ‘방임’이나 ‘방치’를 그와 동일시하면서 '참교육의 모습'을 제시하지도 않았던 듯싶다.

교육의 본질을 찾는 데 ‘기르기’의 개념은 화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쉬운 말일수록 속뜻은 깊다.

해서 다음에는 ‘가꾸기’, ‘북돋우기’ 등의 개념들을 같이 짚으면서 교육의 의미와 본질에 접근해 보려고 한다.  

김병우 (산남 리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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