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준 (두꺼비생태마을 아파트협의회 상임의장, 충북대 교수)

얼마전 베스트셀러 철학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저자인 샌델 교수는 미국식 모병제가 이라크전쟁을 일으킨 중요한 원인이라고 제시한다. 미국이 우리나라처럼 징병제를 유지하는 나라였다면 현재의 군인과 그 가족 뿐 아니라 앞으로 자식을 군에 보내야할 수많은 부모들과 병역 의무를 다하였거나 해야 할 더 많은 시민들이 개전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고 정부의 결정에 떳떳하게 간섭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라크 침공의 명분이었던 대량학살무기는 애초에 거짓이었음이 금방 탄로 났지만 이 전쟁은 ‘그들’이 해결할 일이라며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피고용자로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 병사이거나 더 높은 계급의 군인이고, 전쟁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정치인이거나 관료들이다.

‘그들’은 시민을 위하기에 앞서 인사권을 가진 상관을 먼저 생각하거나 자기들의 권한 확대에 몰두할 가능성이 높다. 샛별초등학교의 인조잔디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그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냐”고 믿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하나씩 둘씩 밝혀졌다. 불요불급한 인조잔디를 지침을 무시하면서 무리하게 강행하다가 부족한 교실을 확충하기 위한 증축 예산이 배정되었다. 인조잔디 때문에 공사차량의 접근이 어렵고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될게 자명한데 학교장은 “모른다”로 일관하고, 교육청 담당자들은 납득할 답을 못하면서 무조건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한다.

아이가 방학하던 날 학교에서는 인조잔디의 고무분말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는다는 지역신문 기사를 가정통신문으로 보내왔다. 시험 조건이나 검사 시기도 나와 있지 않아서 알아보니 4년 전에 검사한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고무분말 외에 푸른색 잔디 잎사귀 모양의 파일(pile)에는 기준치의 40배가 넘는 납이 검출되어 전국적으로 인조잔디 설치를 기피한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숨기는 홍보물이었다. 그럼에도 80%이상의 주민이 인조잔디를 반대하고 있고, 이미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라 별다른 대응이 필요하지 않았다. 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학부모총회 소집 요구를 묵살한 학교측을 비호하고 인조잔디 시공업자 선정을 강행하는 교육청을 말려야 했기에 항의방문을 하고 릴레이 1인 시위를 했다.

그 때 “몇 년 지나 아이가 졸업해서 나가면 그만일 텐데 왜 힘들게 그러시냐”는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을 말한 적이 있다. 요즘 들어 정말 아쉬운 점은 권력과 다소 불화 하더라도 시민의 편에서 일을 하는 공무원이 너무나 드물다. 상사에게 다소 밉보이면 어떠냐. 신분 보장은 확실한데 말이다. “시민의 편에 서라”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행동규범이자 스스로에게 내릴 정언명령이 아닌가. 이런 공무원이 더 많아지게 하기 위해서라도 시민은 끊임없이 ‘그들’의 일에 간섭해야 한다.

손현준 (두꺼비생태마을 아파트협의회 상임의장, 충북대 교수)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