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도로명 유래도 알고 상가도 알고 - ② 산남로

 

〈사진1〉산남동에 있는 '산남로' 도로명 표기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에 있는 ‘산남로’의 도로명 부여 사유는 “현재 법정동 명칭인 산남동 및 지역특성 반 영”이다. 즉 ‘산남로’는 “산남동에 있는 도로”라는 쉽고 단순한 이유로 도로명으로 정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산남로’는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 도로일까? 그리고 그 길이는 얼마나 될까? ‘산남로’가 시작되는 기점은 산남동 274-3번지인데 그 위치는 1순환로에서 산남동으로 진입하는 지점으로 인근에 LG베스트샵과 푸른새마을금고가 있다.

〈사진2〉 '산남로' 구간의 시작 ( 산남동 274-3번지)과 끝(산남동 980번지)

 

‘산남로’가 끝나는 종점은 산남동 980번지로 대략적인 위치는 산남유치원과 대원칸타빌1단지아파트 사이로 구룡산에 막혀 도로가 끝나는 지점이다.

‘산남로’는 도로 구간의 전체 길이가 1,170m로 그리 길지는 않지만 〈사진2〉에서 보이듯이 산남3지구를 동에서 서로 거의 직선에 가깝게 관통하고 있는 산남동의 중심도로라고 할 수 있다.

 

‘산남’이라는 동네 이름이 그대로 도로명이 되었기에 ‘산남로’의 유래는 단순하다. 그렇다면 동네 이름인 ‘산남동’(山南洞)의 유래는 어떨까? ‘산남’(山南) 이라는 이름은 언제 생겼고, 또 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일까?

〈사진3〉 구한말에서 1910년대 제작된 지도에 표시된 산남리와 산북리
〈사진3〉 구한말에서 1910년대 제작된 지도에 표시된 산남리와 산북리

『청주지명유래』에 나오는 산남동(山南洞)에 대한 기록을 보면 “산남동은 본래 청주군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구룡산(九龍山)의 남쪽이 되므로 산남(山南)이라 한 것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산직리, 신곡리, 탑동리, 분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산남리(山南里)라 명명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하였다. 1963년 산남동(山南洞) 으로 바꾸어 청주시 산·미·분·장동에 편입하였다.”고 나온다.

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산남’(山南)이 라는 동네 이름은 “구룡산의 남쪽”이라는 이유로 1914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구룡산의 남쪽”이라서 ‘산남’(山南)이면 “구룡산의 북쪽”은 ‘산북’(山北)일까? 실제 ‘산북’(山北)이라는 동 네도 있었음을 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진3〉은 1890년대인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초에 만들어진 지도로 ‘163.2’라는 숫자가 있는 부분이 구룡산의 정상을 표시한 것이다. 그 아래로 ‘山南里’(산남리)라는 동네가 보이고 그 위에 ‘山北里’(산북리)라는 동네도 실제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구룡산’이 기준이 되어 ‘산남리’와 ‘산북리’가 있었다는 것은 지도뿐만 아니라 다른 자료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다.

〈사진4〉 조선지지자료(1919년) 충청북도 청주군 사주면에 기록된 산남리와 산북리

〈사진4〉는 1919년에 제작된 〈조선지지자료〉로 충청북도 청주군 사주면에 ‘산남리’와 ‘산북리’가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1932년에 조선경찰협회가 제작한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이라는 자료에도 ‘산남리’와 ‘산북리’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후 ‘산북리’는 없어지고 ‘산남리’는 살아 남아 현재의 ‘산남동’이 된 것이다. 만약에 ‘산북리’가 없어지지 않았다면 ‘산남동’ 부근에 ‘산북동’도 있을 것이다. 일제는 기존에 있던 행정구역들을 통폐합하는 정책들을 폈는데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서 식민지 통치의 효율을 기한 것이다.

사실 ‘산남’(山南)이라는 동네 역시 『청주지명유래』에서 보았듯이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산직리, 신곡리, 탑동리, 분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산남리(山南里)라 명명”하면서 새롭게 만들어 진 곳이므로 이름으로만 보면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는 않았다. 그렇지만 과거 산남리(山南里)였던 시절과 현재의 산남동(山南洞)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진5〉 지도를 통해  본 산남리에서 산남동으로의 변천

1914년 산남리(山南里)로 시작된 동네는 1963년부터는 산남동(山南洞)으로 변경된다. 하지만 동네의 모습은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5〉를 보면 왼쪽에 산남리(山南里)였던 시절과 가운데 산남동(山南洞)의 모습이 모두 논과 밭 그리고 방죽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63년에서 2007년까지 산남동은 현재와는 다르게 ‘산미분장동’에 포함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 시기에 법정동인 산남동은 독자적인 행정동이 아니라 ‘산미분장동’ 즉 “산남동, 미평동, 분평동, 장성동, 장암동”이 모두 포함된 행정동의 관할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진5〉오른쪽의 모습처럼 산남3지구 택지개발을 통해 아파트와 단독주택들이 들어서고 많은 인구가 유입되면서 2008년에는 ‘산미분장동’이라는 행정동이 ‘산남동’과 ‘분평동’으로 분동되게 된다.

〈사진6〉 산남동과 분평동으로 분동됨을 알리는 현수막(2008년)

 

행정동이 분동된다는 것은 각기 다른 행정업무을 총괄하는 기관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현재 ‘행정복지센터’라고 하는 곳을 예전에는 흔히 ‘동사무소’, ‘주민센터’라고 하였는데 분동이 되면서 ‘산미분장 동사무소’가 ‘산남동 행정복지센터’와 ‘분평동 행정복지센터’로 변경된 것이다.

그런데 〈사진6〉을 보면 산남동과 분평동의 행정동 경계가 청남로(꽃다리→신탄진 대로)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산남동 행정복지센터’의 위치는 청주온천 뒤에 있는데 예전 ‘산미분장동사무소’였던 건물을 사용하면서 약간 혼란스러운 면이 일부 있게 되었다.

〈사진7〉에서 왼쪽은 법정동 산남동의 범위이고 오른쪽은 행정동 산남동의 범위이다. 행정동 산남동은 법정동 산남동과 법정동 미평동 그리고 청남로가 경계여서 법정동 분평동의 일부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 법정동 산남동과 행정동 산남동의 범위 차이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산남동 행정복지센터’의 주소가 분평동 291-6번지로 뭔가 혼란스럽다. ‘산남동 행정복지센터’는 ‘산남동’에 있어야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구룡산(九龍山)의 남쪽”에서 유래된 ‘산남’(山南). 거기에서 파생된 ‘산남리’(山南里)와 ‘산남동’(山南洞) 그리고 ‘산남로’(山南路). 동네 이름과 도로명의 유래가 비록 단순해 보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역사를 품고 있음을……. 

 

■신제인 소장(생태교육연구소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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