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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분 일찍 나왔을 뿐인데 어스름한 하늘에 새벽 기운이 남아 있다. 5분이 금쪽같은 아침 시간이지만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나서는 길이니 거꾸로 시집살이가 따로 없다. 2학년들이 마지막 기말고사를 보는 오늘, 1학년 아이들이 이벤트를 준비했다. 올해 1학년은 정기 지필시험이 없는 자유학기를 하고 있다. 사회 교과 시간을 1시간 줄이고 고민 끝에 개설한 ‘
141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 교사)
2015.12.23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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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이 쑤시는 걸 보니 내일 비가 오려나?” 대낮인데도 하늘빛이 어둑한 날 어르신들이 종종 하시는 말씀이다.“온 몸이 쑤시는 걸 보면 방학이 다가오나 보네.” 여름 낮이 한껏 길어질 무렵이면 선생님들 입에서 절로 나오는 말이다. 아이들의 입학식을 지켜보며 설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여름 방학을 맞이하고 학교는 아이들 소리 대신 매미소리만 높다.방
140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 교사)
2015.08.2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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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마지막 수업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눈을 팔다 지각한 프란츠는 무거운 교실의 분위기에 어리둥절하다. 아멜 선생님은 특별한 날에만 입는 정장을 입고 오늘도 어김없이 지각하는 프란츠에게 야단을 치는 대신 부드러운 말투로 말씀하신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한 학기 마지막 수업을 준비하는 심정은 일상의 수업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
139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 교사)
2015.08.1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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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늘 수업 시간에 뭐해요?”지난 주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월요일 1교시, 아이들의 질문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뭐하긴? 수업해야지!”나의 대답 또한 재고의 여지가 없다. 짐짓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나를 보며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한데 억지 미소를 지으며 책을 펴드는 아이들 모습이 재미있고 귀엽다. 결과야 어찌 되었건 한 학기 배운 내용으로
138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 교사)
2015.07.1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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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된 그물이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어떤 구슬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에 그 울림이 연달아 퍼진다 - 화엄경 작은 연어 한 마리도 한 생을 돌아오면서 안답니다 작은 철새 한 마리도 창공을 넘어오면서 안답니다 지구가 끝도 없이 크고 무한정한 게 아니라는 것을 한 바퀴 돌고 오면 이
137호 공감교실
박노해
2015.06.2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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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된 그물이 걸려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어떤 구슬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에 그 울림이 연달아 퍼진다’.박노해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화엄경 속 ‘인다라의 구슬’이다.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의 글에서 ‘인다라의 구슬’을 읽고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겠구나 싶었던 반가운
137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 교사)
2015.06.2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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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나무 숲‘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1교시 수업이 시작되기 전, 조금은 어수선한 교실 교탁에 기대서서 아이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둘러보면 나태주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재잘재잘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이들, 큐브 맞추기에 열을 올리기도 하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다 흘낏 내 눈치 한번 보고 또 폴짝거리고 뛰는 녀석들
136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 교사)
2015.06.1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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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들~아가들~선생님이 가끔 여러분을 아가들이라고 부르죠?6학년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가장 높은 학년이지만, 선생님 눈에는 아직도 귀여운 점이 많이 보인답니다^^*선생님도 너희들 만할 때 그랬을까요~?ㅎㅎ벌써 우리 별빛 1기들과 생활한지 한 달이 훌쩍 지나갔네요..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나간건지~여러분과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너무
136호 공감교실
유아라
2015.06.0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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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1기" 여러분 안녕~?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첫날 첫 느낌과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들을 일기로 써오라고 했죠?선생님도 여러분을 만난 첫날을 기념하고자 일기를 써봐요^^오늘 선생님 소개시간이 길~~었는데, 잘 들어준 5반 여러분 고마웠어요♡말한대로 선생님은 여러분을 만나기까지 12년을 기다렸답니다!딱12년 전, 선생님이 여러분과 같은 6학년이었을 때부
136호 공감교실
유아라
2015.06.0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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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이 하얀 천막 아래 형형색색이다. 꽃무늬에 노란 오리 그림, 별자리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학급별로 맞춰 입고 아이들은 연신 싱글벙글한다. 체육대회가 있는 오늘은 스승의 날이기도 하다. 작년에 졸업한 아이들이 삼삼오오 찾아온다. 조잘조잘 전해주는 고등학교 적응기가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다. 간만에 일찍 끝나 부족한 잠도 자고 쉬고 싶을 텐데 잊지
135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 교사)
2015.06.0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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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수업을 준비한 오늘,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나 혼자가 아닌 둘이다. 수업 시간에 특강을 하게 된 중현이와 함께 교실로 들어선다. 중현이는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다. 졸업한 지 1년이 훌쩍 넘었는데 틈날 때마다 학교에 들리는 중현이는 졸업생이 아니라 그저 동네 큰오빠 같다.며칠 전 고등학교가 일찍 끝났다며 어김없이 학교에 들른 중현이에게 지나가는 말
134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 교사)
2015.05.1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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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수업교실 문을 열기 전, 숨을 한번 크게 쉰다. 살짝 긴장된다. 오늘 아이들과 나눌 수업의 주제는 ‘기억’이다.아이들에게 13년 동안 살면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나 사건을 이야기하게 하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들 속에 한 아이가 기억을 말한다. 아이들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너도 나도 자신들의 기억을 말한다. 자동차 바퀴에 다리
133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교사)
2015.04.2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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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반 교실의 주인공은 아이들이 아니다.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는 어머님들이 교실로 오신다. 어떤 분들이실까 궁금하고 설렘과 함께 조금 긴장된다. 교실에 들어서는 어머님들이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눈치다. 아이 자리가 궁금하신 모양이다. 자리에 앉아 아이 책상을 쓰다듬어 보시기도 하고 붙여 놓은 급식 식단표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처음 보는 사이라
132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교사)
2015.04.0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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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로 소중한 아이의 부모님께안녕하세요? 올해 담임을 맡게 된 추주연입니다. 아이들 입학식 첫날, 기대와 함께 염려의 마음도 크셨죠? 저도 설레고 긴장되던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2주 정도 생활하며 차츰 학교에 적응하고 조금씩 더 편안해지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안심되고 기쁩니다. 지내다 보면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갈등도 나타나
131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 교사)
2015.03.1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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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마무리는 12월이지만 학교의 마무리는 2월이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졸업식만을 남겨둔 3학년 교무실은 어수선하고 정신없다. 아이들의 교실은 언제나처럼 생기가 넘치고 조금 더 들떠 보이기도 하다. 2월의 교실과 교무실은 한해살이를 정리하기 바쁘다. 각종 책과 자료, 서류 더미가 수북한 속에 1학기에 받아둔 과제물 묶음이 눈에 띈다. 자원 관련 수업을 하
129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 교사)
2015.02.1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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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집근처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있었다. 코끝이 싸하게 찬 겨울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작년에 졸업한 해윤이 아닌가? 긴가민가하다가 맞구나 싶어 미소가 지어졌다. 눈이 마주친 것 같았는데 해윤이가 나를 스쳐 지나간다. 순간 당황스럽다. 못 알아본 걸까? 모른 척 하는 걸까? 무안한 마음을 추스르고 무심한 듯
128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 교사)
2015.01.29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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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 하수구엔 악어 따위는 살지 않아! 넌 나중에 학교에 남아서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또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를 300번 써야 한다. 알겠지?”존 버닝햄의 동화책 ‘지각대장 존’에서 주인공 존은 학교 가는 길에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져 지각을 하게 된다. 악어에게 장갑을 던져주고, 사자가 바지를 물어뜯고, 다리
126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 교사)
2014.12.1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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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워터 월드’에서 환경오염으로 기온이 올라가고 북극의 얼음이 녹아 지구는 물로 뒤덮이게 된다. 인류의 문명은 수중에 가라앉고, 인간들은 바다 위를 표류하며 생존의 투쟁을 벌인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배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오줌을 간이 정수기에 걸러서 마신다. 인류에게 꼭 필요한 소금이지만 바닷물을 그냥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닷물은 왜 짤
122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교사)
2014.10.16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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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 학교 건물 가장 외진 곳 음악실에서 선생님들이 모였다. 아이들 책상 사이사이로 서있는 선생님들 손에는 악보 한 장이 들려 있고, 음악 선생님의 반주가 시작되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나의 가야할 길 그 아무리 멀다고 해도나는 떠나리라 후회 없이 미련도 없이나의 가슴 속에 새겨놓은 옛 사랑 두고다시 떠나가리 나의 길 찾아노래를 부르는 데 울컥 뜨거
121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 교사)
2014.09.2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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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아이들이 분주하다. 교실 팻말을 바꾸고 무언가를 준비한다. 못 본 척한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2교시 수업을 들어가자 교실을 깜깜하게 해놓고 모두가 책상에 엎드려 있다. 2~3분 나 혼자 수업을 준비하며 왔다 갔다 하는데 아무도 꼼짝 안한다. 처음엔 재미있다가 조금씩 난처해진다. “자, 얘들아~ 지금 모두 잠에서 깨어 고개를 들면 선생님이 아이스크
113호 공감교실
추주연(수곡중교사)
2014.04.14 20:38